검찰청 취조실에 태우와 박 수사관이 마주보고 앉아 있었다. 태우의 얼굴에는 불만이 가득했다. 이미 미국 지사 발령이 취소돼 대기 발령 중이었다. 미호의 아버지인 윤 사장이 노발대발 하며 당장 해고를 하겠다고 했지만 미호가 사정 설명을 하며 간신히 말려 가까스로 대기 발령을 받고 있는 중이었다. 재판 결과를 지켜보겠다는 윤 사장의 일갈은 결과에 따라 다시 미국 지사로 발령이 날 수도 있고 아니면 영원히 해고를 시키겠다는 엄포가 내장되어 있었던 것이다.'박 수사관이 담배를 뽑아 들고 태우에게 내밀었다. '“자! 시간 많으니까 우리 처음부터 차근차근 풀어 봅시다. 우선 담배 한 대 피우며 시작합시다.”'박 수사관이 의자 뒤로 몸을 젖히며 느긋하게 담배를 물었다. 조금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태우에게 과시하고 있었다. 태우가 잔뜩 주눅이 들어 떨리는 손으로 담배를 물었다.'“엄청하와는 연인 관계가 사실이라고 시인을 하셨지요?”'“그, 그게 연인 관계가 아니고 그 여자가 일방적으로........”'“그러니까 두 사람이 평범한 사이는 아니었다는 것이 아닙니까?”'“그, 그렇지요.”'태우는 마지못해 수긍을 했다. '“그럼 엄청하가 낳은 아이도 당신 아이가 맞습니까?”'그러자 태우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그건 저도 모릅니다. 단 한 번 관계를 가진 적이 있지만 그 일로 임신을 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그것은 그 여자의 주장이지 애가 내 애라는 아무런 증거도 없지 않습니까.”'“그렇지요. 그리고 누구 애든 그것이 범죄 행위는 아니니까요. 당신이 애를 죽인 것도 아니니까! 하지만 엄청하는 일차 진술에서 자신이 임신을 하므로 인해 아이 아빠인 당신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자신이 모든 죄를 스스로 뒤집어썼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입니까?”'태우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난 그 여자가 임신한 사실을 몰랐다니까요. 그리고 공금을 횡령한 것은 그 여잡니다. 회사 체계상 난 그 돈에 가까이 가지도 못할뿐더러 은행에서 돈을 인출 한 것도 그 여자임이 모두 밝혀졌지 않습니까! 그런데 내게 왜 이러시는 겁니까?”'“물론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엄청하가 빼낸 돈이 모두 당신에게 같다고 주장 하니까 문젭니다. 또한 우리도 충분이 일리가 있다고 보고 있고요.”'“뭐요? 이것 보십시오! 어떻게 그런 근거도 없는 말을 믿는 겁니까? 죄를 지은 것은 내가 아니고 그 여자라고요! 어떻게 그 여자 말은 믿고 선량한 사람의 말은 믿지 않는 겁니까? 나도 따지고 보면 피해자라고요. 피해자! 그 여자 덕택에 미국 지사 발령도 뒤로 미뤄져 대기 발령 중입니다. 내가 더 이상 어떤 피해를 봐야 합니까?”'태우가 언성을 높이고 소리쳤다. 그러나 박 수사관은 조금도 동요하는 빛이 없었다. 박 수사관이 다시 담배를 빼물었다.'“그런데 이상하지 않습니까? 도대체 돈이 어디로 갔을까요? 엄청하는 돈을 모두 당신이 가져갔다고 주장을 하는데 당신 말대로 그것이 아니라면 그녀가 어디엔가 돈을 감추고 있다는 것인데 아무리 그녀의 계좌나 금융거래를 조사해도 돈의 출처가 나오지 않습니다. 그건 어떻게 생각 합니까?”'“그걸 왜 저에게 묻는 겁니까? 난 돈 구경도 못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낸들 알 리가 없지 않습니까.”'“그래요? 그렇다면 누구에게라도 돈이 나오는 사람이 범인이겠군요. 그렇지요?”'박 수사관이 날카롭게 태우를 노려보았다. 태우는 딴청을 하며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때였다. 최욱철이 취조실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리고는 박 수사관을 밖으로 불러냈다. 욱철의 얼굴에는 불쾌한 빛이 역력했다.'“도대체 왜 이러는 거요? 재판 준비를 하라고 했지 누가 김태우를 취조실로 끌어 들이라고 했습니까? 한 번 끝난 재판을 왜 우리 손으로 뒤집으려고 합니까? 그 여자가 공금을 횡령한 명백한 근거가 있는 이상 절대로 재판은 뒤집어 질 수 없는 겁니다. 우린 그 돈이 누구에게 갔던 신경 쓸 필요가 없잖아요. 횡령에 대한 물적 증거만 가지고 있으면 절대로 재판이 뒤집어 지지 않는데 뭣 때문에 사서 문제를 크게 일으키려 합니까? 당장 이선에서 끝내세요!”'욱철이 핏대를 내며 다그쳤다. 박 수사관의 얼굴이 굳어졌다.'“검사님! 도대체 왜 이러십니까? 저자가 그 돈을 가지고 간 실질적인 범인인데 저런 놈을 그냥 두자는 겁니까? 죄 없는 여자는 감방에 가두고 말입니까?”'박 수사관이 참지 못하고 기어이 언성을 높였다. 하지만 욱철 역시 물러서지 않겠다는 표정이었다. '“이것 봐요! 돈을 빼낸 년이나 그 돈을 썬 놈이나 모두 그 밥에 그 나물입니다. 이미 종결된 사건을 지금 와서 어쩌자는 겁니까? 그래서 사건이 뒤집어지면 내 경력에 오점이 생기는 것은 누가 책임을 질 겁니까?”'욱철이 지지 않고 소리를 질렀다. 박 수사관은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결국 자신의 검사 경력에 오점을 남기지 않겠다는 욱철의 속셈이 사건의 진실규명보다 우선이었던 것이다.'“여기서 마무리 하세요! 더 이상은 용납하지 않겠습니다. 만약 내 말을 무시하면 담당 검사 직권으로 당신을 이 사건에서 손을 때게 만들겠습니다. 알겠어요?”'욱철은 경고를 하고 나가 버렸다. 박 수사관의 얼굴에 분노가 가득했다. '“씹할! 정말 좆같아서 못해 먹겠네!”'그는 분을 참지 못해 옆에 놓여 있던 쓰레기통을 냅다 걷어찼다. 주변에 있던 다른 수사관들이 눈치를 살피며 슬슬 피해갔다. 박 수사관이 가까이 있는 수사관에게 소리를 질렀다.'“저 새끼 내보네! 난 이 사건에서 손때겠어!”'그리고는 문을 발로 차며 나가 버렸다. 박 수사관은 어디든지 가서 고함이나 크게 지르고 싶었다. 속에서 열불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는 그길로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리고는 옥상 난관에 서서 담배를 빼물었다. '“썩어 빠진 놈!”'저절로 욕이 튀어 나왔다. 국가의 녹을 먹는다는 공무원이 더구나 법을 집행하는 검사라는 놈이 자신의 안위만 챙기는 그런 비겁한 행동에 저절로 환멸을 느꼈다. 성질대로 했으면 흠신 두들겨 패고 싶었다. 그때였다. 이를 갈고 있는 박 수사관에게 누군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어렵지요?”'박 수사관이 돌아보니 거기에는 박승호 검사가 웃으며 서있었다.'“검사님!”'박 수사관은 자신도 모르게 답배를 껐다. 검찰청 내에서 가장 신임하는 검사가 바로 그였다. 그러나 승호는 자신의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건넸다. 한 개비는 자신의 입에 물었다.'“우리 술이나 한 잔 할까요?”'“네? 아직 퇴근 시간이 이른데요?”'“하하하! 까짓! 술 마시는 것도 업무 중에 하납니다. 스트레스를 풀어야 다음 일이 잘될 것 아닙니까? 하하하!”'역시 시원시원한 박 검사였다. 박 수사관의 얼굴에서 비로소 웃음이 번졌다.'“네! 좋습니다. 오늘은 실큰 취해야겠습니다.”'“그럽시다. 어디 코가 삐뚤어지게 마셔 봅시다! 하하하!”'승호가 크게 웃었다. 박 수사관이 정색을 하고 말했다.'“이왕 검사님을 만났으니 부탁을 할 것이 있습니다.”'“그래요? 뭡니까?”'“절 검사님 부서로 데려가 주십시오. 아님 사표를 낼 각오를 하고 있습니다.”'승호가 놀란 눈으로 박 수사관을 바라보았다. 사실 그에게도 박 수사관은 꼭 필요한 배트랑 수사관이었다.'“좋습니다! 내가 힘을 쓰겠습니다. 나야 박 수사관이 우리 부서로 온다면 대환영입니다.”'“감사합니다. 검사님! 이제야 술맛이 나겠습니다. 하하하!”'두 사람은 웃으며 옥상을 내려갔다. 한마디로 의기가 투합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