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유정은 맥 빠진 얼굴로 천천히 사무실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9층까진 한참이다. 그래도 유정은 쉬지 않고 계단을 올랐다. 계단 오르기가 지친 게 아니라 뭔가에 무척이나 지친 표정이었다. 그러나 9층을 몇 계단 남겨두고 유정은 맥없이 계단에 주저앉아 버렸다.'“휴우.”'긴 머리를 헝클어트리며 유정은 지친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잠시 앉아 있는 듯하던 유정은 가방에서 뭔가를 꺼내기 시작했다. 몇 장을 넘기던 유정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답답한 듯 계속 한숨을 토해내기 시작했다.'“이번이 정말 마지막이었으면……. 정말 지친다. 지쳐. 대체 다들 나한테 왜 이러는지. 이제 정말 빈털터리네?”'답답한 한숨을 토해내더니 통장을 가방에 넣은 채 유정은 다시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가방에서 유정의 마음과는 달리 경쾌하게 전화벨이 울리자 유정은 맥없는 표정을 한 채 전화를 받았다.'“어, 지영아? 사무실 앞. 아니, 입맛도 없고…….”'전화를 받으며 사무실 앞 비상계단에 유정은 다시 주저앉았다.'“응, 옥상? 그래, 알았어.”'유정은 지영의 전화를 끊더니 시계를 봤다. 점심시간은 아직 삼십여 분이 남아 있었다. 사무실 쪽을 한번 흘낏 보던 유정은 이내 옥상으로 통하는 계단을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옥상 문을 여니 시원한 바람이 유정의 머리칼을 날리고 있었다.'“지영아, 어디 있어?”'“어. 여기.”'소리 나는 쪽을 보니 왼쪽 모퉁이 쪽에 지영이 유정 쪽을 바라본 채 서 있었다.'“......”'지영 쪽으로 유정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은행 갔다 온 거야?”'“어.”'“방이 그래도 금방 빠졌나 보네?”'어쩐지 걱정스런 기색이 완연한 지영이었다.'“운이 좋았어. 아니다! 내가 운이 좋은 게 아니라 우리 오빠가 운이 좋은 건가?”'“진짜 모질다, 모질어. 내가 할 소린 아니지만 정말 너희 엄마랑 오빠 너무한 거 아니냐? 지금 대체 몇 번째야? 이제 어지간히 좀 하시라고 해. 네가 딱 부러지게 말을 하란 말이다.”'답답한 듯 지영이 유정에게 다그치고 있었지만 유정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한숨을 내쉬며 지친 듯 유정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도시의 풍경이 고스란히 펼쳐졌다. 바삐 걷는 사람들, 오늘도 어김없이 꽉 메운 차들, 매연, 그 매연에 찌든 도시의 가로수들, 온통 회색의 뿌연 콘크리트 건물들까지. 보기만 해도 답답한 마음이 더 보탬이 되고 있었다.'“이제 어떡할 거야?”'“뭘?”'“너 이제 남은 거 하나도 없잖아? 너 전세금까지 다 빼주고 이제 어떡할래? 당장 거리에 나앉게 생겼잖아?”'“방법이 있겠지.”'“어휴, 나라도 도와주고 싶은데 어떡하나? 알다시피 나도…….”'“여태 너한테 도움 받은 것도 못 갚고 있는데 어떻게 또 너 도움을 받아? 괜찮아. 어떻게든 되겠지 뭐.”'“요번 주까지 방 빼줘야 한다며? 갈 덴 구하고 있어?”'“어. 근데 힘드네? 정말 고시원이라도 들어가야 할까 봐.”'“비참하군. 정말, 내가 다 화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