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뉴욕 맨하탄의 스카이라인 한가운데 우뚝 솟은 로일럿 빌딩, 그중 언제나 불이 꺼지지 않는 76층. 영국의 많은 유서 깊은 귀족 가문 중에서도 손꼽히는 가문인 로일럿 가문의 차기 백작이자, 이 건물의 소유주인 테디 우현 민 로일럿은 자신의 사무실에 앉아 아침 신문을 읽고 있는 중이었다. '“오늘도 출근이 빠르시네요. 일찍 나오길 잘한 것 같습니다.”'비서실장인 창이었다. '창이 우현과 같이 일을 하게 된 지는 햇수로 5년이 다 되어간다. 중국인으로 뉴욕에서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일을 하던 중, 창의 능력을 높이 평가한 우현이 그를 스카웃 해와 지금까지 함께 일을 해 오고 있었다.'창은 등 뒤로 아침 햇빛을 받으며 의자에 앉아있는 우현을 바라보았다. 우현은 남자인 창의 눈에도 매력적인 남자였다. 크고 빛나는 검은 눈에 깨끗하고 투명한 느낌이 나는 보드라운 피부, 그렇다고 여성스러운 분위기를 가진 남자는 아니었다. 군살 없는 몸매에 적당히 벌어진 어깨와 다부진 체격.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그는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부류였다. 그런 우현을 바라보는 창의 눈엔 우현을 향한 존경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우현은 이제껏 자신이 보아온 상사들과는 달랐다. 젊은 경영진들이 대부분은 가지고 있는 소위 깡다구로 불리는 것을 그는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다. 자신이 아니면 안 된다는 근거 없는 배짱은 더더욱 없었다. 냉철한 현실 인식능력과 합리적인 판단. 그리고 단호한 의지와 굳은 인내가 우현이 자신에게 보여준 전부였다. '“미안하군.”'“별말씀을요.”'짧게 답한 창은 능숙한 솜씨로 진하게 뽑은 블랙커피를 책상에 올려놓은 다음 사무실을 나왔다. 혼자 남은 우현은 느긋한 자세로 터키산 잎담배에 불을 붙였다. 곧 순수한 잎담배 냄새가 사무실 안을 채웠다. 지금 그는 자신의 회사도 지키지 못해 남의 손에 회사를 팔아야만 하는 패배자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더욱이 우현이 기다리고 있는 패배자는 자신의 패배를 받아들이지도 이해하지도 못했다. 승리와 패배, 승리자와 패배자가 다른 어느 곳 보다 명확한 이곳에서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지 못하는 자는 낙오되고 만다. 순순히 패배를 인정하고 다음을 노려야만 살아갈 수 있는 곳. 그게 바로 이곳, 뉴욕이란 도시다. ''“제너럴 일렉트릭사의 마크 씨가 오셨습니다.”'“들여보내.”'창이 육중한 사무실 문을 열자 뒤이어 마크가 들어왔다. '가장 먼저 마크의 눈에 들어온 것은 거대한 사무실의 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거대한 흑단나무 책상과 거기에 앉아 유유히 담배를 태우고 있는 남자의 모습이었다. 컴퓨터 두 대와 앞에 놓인 서류를 제외하고는 넓은 책상 위엔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앞에 앉은 남자로 인해 빈 책상은 물론 거대한 사무실까지 좁게 느껴질 정도로 남자가 뿜어내는 분위기는 거대했고, 위압적이었다. '바로 저 사람이 ‘테디 우현 민 로일럿’ 이다.'뉴욕은 물론 세계 정계를 이끈다는 상위그룹, 그 그룹에서도 단연 꼭대기 층에 속해있는 자. ''우현은 마크와 눈이 마주쳤음에도 서두름 없이 들고 있던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껐다. 마크는 슬쩍 곁눈으로 그의 표정을 살폈다. 아무 표정 없이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 눈빛에 오금이 저렸다. 잠시 후 우현은 거의 다 탄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껐다. 마크는 재떨이에서 형편없이 구겨진 담배꽁초가 자기의 모습 같아 좀 전까지만 해도 잘 돌아가던 머리가 딱 멈추면서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는 것 같았다. 그 정도로 우현의 움직임 하나하나엔 사람을 주눅 들게 하는 위압감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