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두근, 터질 듯한 가슴을 동여매고 그를 밀어냈다. 천천히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다리에 힘이 풀려 저도 모르게 휘청거렸다. 병풍 뒤, 그들의 뜨거운 숨결 외에는 들리지 않는 은근 야릇한 장소였다. '그를 최대한 의식하지 않으려 냉정한 척 다시 한 번 기대어 오는 그를 밀쳐냈다. 그도 더 이상은 팔을 뻗어주지 않는다. 다행이다. 시선을 마주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그녀가 어떤 의사를 피력하는지 보이기 위해서라도 고개를 들었다.'미리내는 망연자실 아무렇지도 않은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서 있는 기성을 올려다봤다. 또 다시 당황. 분명 어젯밤 무슨 일이 있었을지 대충 상상할 만도 한 그가 이런 말을 건네는 것이 그녀로서는 당황스러워 애써 어정쩡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농담이려니, 가볍게 받아들여 어떻게든 이 상황에서만 벗어날 생각뿐이었다. '“머리가…… 아파요.”'상황을 벗어날 만한 적당한 말이, 아니 정말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아프다고 말하기 무섭게 지끈거려 오는 관자놀이.'“알았어. 나가자. 이제…… 용서해 주는 거지?”'무엇을? 자매가 대놓고 둘을 전각 안에 가뒀던 일을? 아니면, 애초에 보내서는 안 되는 곳에 남장까지 시켜서 보낸 기성을? 누굴 용서하라는 것일까? '갑자기 극심한 환멸이 몸 안에 차올랐다. 결국은 자신의 의지대로 개양의 품에 안겨놓고, 이제 와서 다른 이들을 원망하며 어떻게든 당시의 상황을 지우려 한다. 참, 못났다. '“용서하고 말 것도 없어요. 결국 다…… 제 탓인 걸요.”'미리내가 병풍을 걷어내고 꾸역꾸역 걸었다. 그리고 한 발 한 발 떼고 있는데, 드르륵 거친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다. 환상일까? '“어?”'“야! 미르!”'그다. 개양이다. 미리내의 얼굴에 환한 안도가 번졌다. 지금은 차라리 ‘미르’인 것이 훨씬 마음 편했다. 미리내였다면, 그가 미리내라 불렀다면, 아마도 천리만리 미친 듯이 도망가 버렸으리라. '개양을 대체 어찌 바라보면 좋을지 감이 안 온다. 가슴은 미친 듯이 파동하고 온 혈관들은 찢길 듯이 순환한다. 그가 찍은 모든 낙인이 열꽃처럼 화해 붉은 가루가 되어버릴 것만 같고……, 허벅지 안쪽 깊은 샘에서는 물컹 말간 물기를 쏟아냈다.'그를 기억하는 그녀의 비밀스러운 샘. 아랫입술을 깨물고 최대한 부드럽게 웃어주었다. 그리고 다리가 툭 꺾였다.'“야! 미르!”'개양이 달려들어 쓰러지는 미르를 받아냈다. 얄궂을 정도로 가녀린 몸매, 그리고 혈색 없는 하얀 얼굴이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기시감을 일으켰다. 그도 잠시였다. '“형님, 얘 왜 이렇게 뜨겁지?”'개양이 미르를 바닥에 가지런히 눕히고 꽉 안아 쥐었던 어깨를 천천히 풀었다. 기성도 손을 뻗었으나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다만 뜨겁다는 말에 당황해 기성이 울상이다. '“뭐라고?”'기성이 당황해 달려들어 바닥에 드러눕혀진 미르의 이마를 짚어보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감기에 걸렸나 보군.”'“감기? 이놈은 밤새 대체 어디 있었기에 감기에 걸려? 내 참!”'귀찮은 얼굴로 눈살을 찌푸리고 바닥에 그대로 널브러져 둔 채 개양이 기성을 쳐다봤다. '“그런데 형님, 미리내라는 아이 못 봤습니까? 윤성 권시라 하던데. 형님도 알 것 아닙니까?”'기성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미르를 바라보면서 퉁명스럽게 말했다.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이 윤성에 권시가 수천만 명 되는데, 일일이 이름에 얼굴까지 어떻게 기억을 하지?”'말을 꺼내놓고 보니 기성의 말도 맞다 싶었다. 개양의 눈에는 한없이 특별한 미리내일지라도 기성의 눈에는 그저 흔하게 보이는 몇몇 꽃 중 하나일 뿐이리라. '개양이 입 꼬리를 슬며시 휘며 등을 보였다. 기성이 그를 불러 세웠다.'“개양, 네가 이놈 좀 옮겨라.”'“에에?”'가려던 차였는데 난데없는 기성의 부름에 그가 눈살을 찌푸리고 입가를 비틀었다. 다른 때 같으면 자신이 솔선수범 온갖 배려를 다 하는 기성이건만, 오늘따라 미르에게 야박하게 굴고 있었다. '“형님이 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