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려 주소서, 살려 주소서! 천신(天神)이시여, 부디 살려 주시옵소서!”'하얀 제의(祭衣)를 입은 영천관(靈天官)이 양팔에 하얀 깃발이 치렁치렁 매달린 대나무와 원색 깃발을 들어 올리고 하늘을 향해 간절한 기도를 올렸다.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천단의 길이는 20여 척에 이를 정도로 장대했고, 높이는 3단이었으며 각 단에는 전국에서 날아온 진귀한 음식들과 과일, 생선, 육고기로 가득했다. 양 옆에는 한 장(丈)에 달하는 대나무 깃대가 세워져 바람결에 흩날리고 있었다. '천라궁,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별궁으로 이곳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영천관과 신녀들이 드나든다. 현재 제사를 주관하는 신묘한 능력을 지닌 영천관 한 명과 그녀의 영기를 받쳐주는 부영천관 세 명, 그리고 신녀들 수백여 명이 함께 기도를 드리며 엎드려 있었다. 천단과 영천관이 제사를 지내는 부분은 하늘과 맞닿게 하기 위해 수백의 계단을 따라 올라가야 하도록 건축되어 있고 그 부분만 하늘로 돌출되어 있다. '부영천관으로 어머니 한귀재 영천관을 따라 이 궁에 들어와 산 미리내는 아랫입술을 씹으며 상황을 지켜봤다. 거대한 나라 화국 내에서 최고 영력을 지닌 무당인 모친은 엄격한 선발심사를 거쳐 이곳 천라궁의 최고 수장이 되었다. '그런데 최근 큰 문제가 생겼다. 바로 황제 경정제의 아들인 황태자 권이 갑작스러운 건강악화로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황태자 권(眷)은 7명의 공주 사이에 태어난 넷째 적통 황자로 경정제에게는 하나뿐인 아들이었다. 최근에 후궁이 아들을 낳긴 했지만 이제 겨우 돌도 안 된 핏덩이였다. '그렇게 따지고 보면 권의 건강은 곧 나라의 건강인 셈. 그런 상황에서 영천관의 건강 악화는 권의 건강 악화와 일맥상통하는 것과도 같기에 천라궁(天羅宮)으로 귀추가 주목되고 있던 터였다. '벌써 열흘. '-저렇게 해도 소용없다니까!'미리내가 바로 곁에 앉아있는 붉은 호랑이를 흘끗 노려봤다. 이글이글 타들어 가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신령한 수호물이자 그녀의 유일한 친구인 ‘적호(赤虎)’다. 시뻘건 두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는 영물(靈物)의 모습은 그야말로 위협 그 자체였으나, 미리내는 그의 존재를 전혀 의식하지 않는 듯 묵묵한 모습이었다. '-시끄러워!'영음(靈音). 적호와 미리내만이 들을 수 있는 말소리였다. 미리내가 떽 하고 소리를 내지르며 눈을 한 차례 부릅뜨자 적호가 꼬리 말은 개처럼 짙고 붉은 눈썹을 꿈틀거렸다. '털 전체가 붉은 빛을 띤 기기묘묘한 짐승, 그것은 다른 이에게 절대 보이지 않고 피의 계약인 혈맹에 의해서만 주종관계가 형성되어 주인에게만 모습을 드러내는 신의 영수이다. 그런 존재가 한낱 인간인 미리내에게 움찔 주눅 든 표정이다.'-알았다, 꼬맹아.'미리내가 눈에 쌍심지를 켜며 그를 다시 한 번 노려봤다.'-꼬맹이, 꼬맹이! 나이 열아홉 짜리 꼬맹이 본 적 있어? '-아하하하, 천수를 누린 나한테 너 따위 인간은 고작 꼬맹이, 아니 쌀 한 톨만도 못한 존재지.'-쳇, 그런 존재한테 약점 잡혀 주종관계 맺은 놈이 누구더라?'미리내가 입 꼬리를 씰룩거리며 한쪽 눈썹을 슬쩍 밀어 올리자 적호가 흠흠 헛기침을 하더니 어슬렁거리며 모습을 감췄다. 까만 어둠에서 그의 말소리만 낮게 울렸다. '-계집애들은 정말 딱 질색이야! 어흥!'매번 저런 식이다. 조금만 말로 싸워 이길 것 같지 않으면 스리슬쩍 모습을 감춰 위기를 넘기는. 적호가 사라진 어둠을 노려보며 그녀가 쌜쭉거렸다.'“칠성신이시여, 삼신이시여, 부디 이 나라의 적통이신 황태자 전하를 지켜 주시옵소서!”'어머니 귀재의 목소리가 채찍처럼 귓가에 울렸다. 잠시 딴청을 부리던 미리내도 얼른 허리를 굽히고 이미 수 배 반복한 절을 다시 시작했다. '열흘 내리 하고 있는 기도. 손바닥에 불이 날 것 같고, 지문도 흘러내릴 것만 같았다. 대체 무엇을 위한 기도인지 목적마저 희미해져 갔다. 남의 목숨을 위해 이 무슨 무모하고 어이없는 체력소모인지. 물론 한 나라를 이끌어 가는 황태자의 목숨을 연명케 하는 중요한 기도이니 더 열심히 치성을 올려야 하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황태자가 죽거나 말거나 나랑 무슨 상관이람! 아아, 이제 그만 해방되고 싶다!’'지긋지긋해졌다. 자신의 목적보다는 황실의 목적을 위해 매일 계속되는 강행군. 온몸이 욱신거릴 정도로 심한 근육통이 계속되었다. 물론 모친은 그보다 더한 고통에 빠져 밤마다 심한 통증을 호소하며 불면의 나날을 지속하고 있었다. 그런 모친을 생각하면 이러면 안 되는데, 나이가 어려서인지 아직 철없이 제 실속에만 자꾸 시선이 갔다. '한 시진 이상 계속된 치성이 끝났다. 마지막 절을 올리고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순간, 귀재의 몸이 휘청거렸다. 세 사람의 부영천관들이 달려가 그녀를 부액했다. 미리내 또한 딸이니 후다닥 달려가 그녀를 가장 먼저 부액했는데 귀재의 하얀 천의가 흠뻑 젖어 퀴퀴한 냄새가 흘러나왔다. '“영천관님, 괜찮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