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있을 법한 무념무상의 인간을 제외하고는 사춘기라 칭하는 질풍노도의 십대를 보내지 않았던 인간은 없을 것이다. '하선우 역시 예외는 아니다. '세상 누구도 그를 이해하지 못한다며 고독에 빠져 외로움에 몸부림친다거나, 영원을 교감할 지란지교를 간절히 원한다거나, 누구나가 부러워할 아름다운 사랑을 꿈꾼다거나, 혹은 죽음을 맞이하여 돌아본 인생이 부끄럽지 않아야한다는, 한마디로 폼 나는 고차원적인 고민 따위는 절대 아니다. 잠자리를 뒤척이게 하고 기나긴 밤과 낮을 한숨 쉬게 하며 비애감을 안겨준 1차원적인 단 하나의 고민 덩어리는 그야말로 난쟁이 똥자루 같은, 초등학교 졸업 이후로 단 1센티미터도 자라지 않는 염병할 그의 키다. '155센티미터. '1개월 전, 몇 날 며칠 단식투쟁하여 엄마의 손을 잡고 다녀온 병원 의사의 진단대로라면 아직 유아기를 벗어나지 못한 그의 무릎 성장판의 미래 활약상에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하겠지만, 중학교 입학 후 앞줄에서 동고동락하던 친구들은 하나 둘 뒷줄로 사라지고, 중3이 된 지금 달랑 혼자 남아 3번도 2번도 아닌 ‘야, 1번’이라는 굴욕적인 출석번호로 불릴 때마다 어둡고 습기 찬 땅속에 편하게 눕고 싶은 심정이었다. '탱글탱글 여물어가는 붉은 해가 시원한 바다를 콜(call)하는 여름이 다가오는 요즘은 더욱 비참의 나락에서 허우적거린다. 머리통이 여물어 갈수록 물이란 물은 멀리하게 되었다. 애초부터 바다를 아니, 수영장을 싫어한 것은 아니다. 사랑했었다. 특히 호텔 수영장을. 그곳은 세상 모든 남자들의 천국이었다. 남자들이 꿈꾸는 여자들이 반나체나 다름없는 비키니를 입고 쫙 빠진 몸매를 여봐란듯이 드러내는 곳이며 또한 도덕적, 법적 제재 없이 선글라스 너머로 쫘악 훑어보는 곳이기 때문에 사랑할 수밖에 없는 장소다. 그러나 단신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 먼 당신이 되어버린, 물! 머리통이 커갈수록 짧아져만 가는 다리를 보면 가슴이 메어진다. '언젠가 신문에서 읽었다. 키 작은 사람보다 키 큰 사람이 성공한다는 큼직한 기사를. 백번 옳은 말이다. 몽당연필 같은 놈을 누가 사랑해주고 어느 사업주가 써주겠는가. 누군가 위로한답시고 키 작은 역사 속 절대 권력자였던 나폴레옹이나 덩샤오핑 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등등을 운운하며 같잖은 위로를 한다면 죽을 만큼 팰 것이다. 21세기를 무색하게 만드는 시대에 뒤떨어진 무책임하고 어처구니없는 망발을 지껄이는 주둥아리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게. '하선우가 살고 있는 21세기인 현 시대를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비주얼(Visual)시대’이다. 이쯤에서 밝히자면 난쟁이 똥자루 같은 그의 키에 붙은 얼굴은-스스로 이런 말하기에 조금은 쑥스럽기까지 하겠지만- 객관적으로나 주관적으로나 끝내주게 잘생겼다. 비주얼쇼크라고 불릴 정도의 두상이 얹어진 장동건이나 조인성, 강동원을 전혀 닮지는 않았지만, 나름 개성 있고 잘생긴 얼굴이다. 흔히들 말하는 키우고 싶은 완소남에다 마음까지 따뜻한 훈남이다. 자랑은 아니지만 버스나 지하철에 앉아 있으면 뭇 여학생들과 오래전 남의 여자가 되어버린 아줌마들 그리고 심지어는 남자들까지 흘끔거린다. 다만, 그들의 눈이 그의 얼굴을 지나 밑으로 밑으로 쭉 내려가 바닥에 닿지 않는 원수 같은 짧은 다리를 발견한 순간 흘리던 군침이 멈추고 측은지심이 가득 찬 눈으로 저희들끼리 수군거리기 다반사지만. '물론 그에게도 황금기는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잘생긴 외모 덕분에-초등학교 졸업 전 키가 이미 저주의 숫자, 155였다- 조숙한 5, 6학년 여학생들과 타 학교에서 원정 온 수많은 여학생들로부터 핑크빛 러브레터를 거짓말 조금 보태서 수백장정도 받았었다. 시간이 흐르는 만큼 하트를 쏘아대는 여학생 숫자가 역비례로 줄어들더니 중학생이 된 이후로 현저하게 격감했고, 중3이 된 지금은 러브레터는 더 이상 날아오지 않고 그에게 눈길 주었던 여학생들은 모두 죽었는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이제 주위에는 버릇없는 수많은 여학생들이 그의 정수리를 쓰다듬으며 ‘크면 한 인물 하겠다.’라고는 한다.'아! 그리운 옛날이여! '조숙하기나 했으면 한창 상한가를 치고 있던 초등학교 시절 잘 나가는, 시쳇말로 얼짱 여자친구를 낚았을 텐데 그 당시에는 숙맥이었고, 어리바리했던 탓에 오직 공부에만 관심 있었다. 이성에 눈이 확 터진 황금의 사춘기인 지금 그 좋다고 쫓아다니는 여학생은 하나도 없으니 환장할 노릇이다.'“어머! 어머!” '한참을 졸고 있는데 어디선가 놀람과 경악의 외침과 애처로움이 가득한 시선을 견디지 못하고 감았던 눈을 살며시 떴다. '‘설마,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