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합니다. 하니 치킨입니다. 네? 지금 저희 배달시간도 훨씬 지났는데…… 게다가 거긴 너무 멀어서 배달이 안 됩니다.”' 그렇게 말을 하고 전화를 끊으려던 하니의 얼굴에 갑자기 웃음꽃이 피었다.' “네? 열 마리요? 당연 연장 근무죠. 네. 당연하죠. 열 마리면 한 시간 거리도 배달 갑니다. 네. 해안도로 옆에 아파트 505호요. 네. 지금 바로 후다닥 달려가겠습니다.” ' 집들이를 하는데 안주가 모자란단다. 전화를 끊자마자 하니의 손놀림이 빨라졌다. 먼저 기름 솥에 불을 지피고 냉장고에서 미리 튀김가루에 재워 숙성을 시켜 둔 닭을 꺼낸다. 그런 다음 기름이 끓으면 닭을 집어넣고 바삭하게 튀기면 끝이다. 한 번에 통닭 열 마리면 지금까지 하니가 가게를 물려받은 이후 전대미문의 주문이라 일손이 모자랐다.' 이 자식은 누나가 이렇게 바쁜데 뭐하고 있는 거야?' “야, 엄희철!”' 당연 혼자서 하는 게 무리였던지라 하니가 가게 뒤편에 딸려있는 방에서 자고 있는 동생 희철을 흔들어 깨웠다. ' “야 빨리 일어나! 한 번에 열 마리 주문 들어왔어.”' “장난치지 마!”' 엉덩이에 꽂히는 하니의 매운 손매에 희철이 눈을 번쩍 떴다.' “내가 장난하는 걸로 보이니?”' “아니. 그런데 누나! 나 술 먹고 들어온 거 알잖아. 오늘 하루만 봐 줘라!”' “안 돼! 한 번에 열 마리라서 혼자하려니까 박 터지겠어. 너, 이번 달 용돈 받기 싫은 건 아니겠지?”' “아, 정말! 알았어. 치사하다. 할게! 대신 술 마셨으니까 배달은 시키지 마!”' 희철에게 최고의 협박은 용돈 동결이다. 하니가 방긋 웃었다. 귀여운 자식!' 열 마리의 닭을 몽땅 튀겨내고 그 중 절반에 소스를 묻혀내고 양배추 샐러드를 담고 절인 무와 오이 피클까지 담아내면 끝이다. 하니가 머리에 헬멧을 눌러 쓰고 팔꿈치와 무릎에 보호대를 착용하는 동안 희철이 치킨을 실었다.' “수고했어. 철! 이 누나는 돈 벌러 갈 테니까 가게 잘 보고 있어. 이번 달 용돈 0.5% 인상이다.”' “아, 뭐야! 그건 티도 안 나잖아!”' “티끌모아 태산이다, 이놈아!”' “누나, 조심해!” ' 희철이 열 마리의 치킨을 오토바이에 싣는 동안 하니는 헬멧을 눌러썼다. 오토바이를 운전하는 하니가 안타까운지 희철이 오토바이를 타고 떠나는 하니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 헬멧과 보호 장비는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을 나갈 때 필수 조건이다. 만약의 사고에 대비해 하니는 헬멧과 보호 장비 착용을 절대 빼먹지 않았다. 배달을 하는 도중에 크고 작은 사고로 인해 몸이 성한 곳이 없던 아빠 생각에 그것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려고 노력했다. ' 하니가 양 손에 각 다섯 개씩 치킨을 들고 505호의 벨을 누르자 어디서 많이 본 쾌쾌한 얼굴 하나가 고개를 쑥 내밀었다.' “가시나, 맞네. 혹시나 하고 시켜 봤더마는. 내다 칠갑이.”' 그의 얼굴을 보자 하니가 화들짝 놀라며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 꿈에 볼까 두려운 피칠갑! 하니가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피칠갑! 네가 여기 웬일이냐?”' “웬일은 니가 통닭집 한다해서 내가 시켰다 아이가. 오늘 이사 왔다. 그래서 우리 동생들하고 술 한 잔 한다. 가시나 니는 내가 안 반갑나? 니는 뭐시 더 이뻐졌네.” ' 다시 이 놈 면상을 보게 될 줄이야. ' “칠갑아, 나 지금 바빠서 빨리 가 봐야 돼!”' “알았다 친구야! 가시나 바쁘지도 않으면서 바쁜 척 하는 거 다 안다. 자, 돈이나 받아라! 다음에 같이 술 한 잔 하자! 우리 친구 아이가!”' ‘친구 아니다.’' 하니가 억지로 방긋 미소를 짓고는 칠갑이 건네 준 돈을 세어보지도 않은 채 치킨 열 마리를 칠갑에게 건네고는 빛의 속도로 그 자리를 빠져 나왔다. ' 별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 피칠갑! '고등학교 3학년 때 듣도 보도 못한 시골 깡촌에서 전학 온 유학생. 학생인지 건달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 외모를 소유하고 싸움이 있는 장소엔 꼭 어김없이 나타나는 그런 존재. 고3이라기보다는 체육 교생의 포스가 더 강했던 칠갑.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하니가 좋다며 칠갑이 몇 개월 동안 따라다닌 걸 생각하면 하니는 아직도 손발이 오그라들었다.' 다시 이놈과 질긴 인연이 시작되는 건가? ' 505호에 무사히 배달을 마치고 하니가 해안도로 커브 길 한쪽에 세워 둔 오토바이까지 털레털레 힘없는 발걸음을 옮겼다. 말이 치킨 열 마리지 양 손에 들고 보니 팔이 빠질 정도로 무거워 배달을 마치고 나자 팔에 기운이 다 빠졌다. 하니가 치킨 값으로 받은 현금을 세었다.' “그래도 막판에 좀 짭짤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