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킹콩 웃음과 마른 엉덩이''' ' “요즘도 통 풍선을 안 불어 주나 보군.”' 순간 남자의 말에 미영은 급체한 사람처럼 얼굴이 하얗게 굳어졌다. 그것은 분명 자신의 풀썩 꺼진 마른 엉덩이를 두고 하는 말임을 간파했기 때문이었다. ' ‘사이코, 변태 자식! 학교 다닐 때도 날 놀려 먹더니, 이 나이에 또 놀려 먹어.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하필 저 놈이랑…….’' *' 두 달 전, 미영이 일하는 개인 산부인과 병원은 세 명의 간호사가 돌아가면서 의사를 보조하여도 충분할 만큼 한가했다. 현저히 줄어든 손님들. 그것은 좋은 현상이 아니었다. ' 저 출산이라는 대세와 낮은 의료수가책정 등으로 몇몇 다른 산부인과에서는 이미 폐업을 했다는 소문이 흉흉하게 나돌고 있을 때였다. 하지만 자신이 근무하는 병원이 그런 소문의 진원지가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런데 설마가 사람을 잡고야 말았다. 병원이 다른 사람에게 인수되었던 것이다.' 다른 큰 변동 사항 없이 의사만 바뀌게 되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미영은 그 일로 마음이 무거웠다. 과연 의사가 바뀐다고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 될까 싶기도 하고 산부인과에서 간호사로 일할 날도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마음마저 심란했다. 그런데 미영의 울적한 기분과는 달리 다른 두 보조 간호사들은 새로 바뀐 의사에 대한 기대감으로 들떠 있었다. ' “의사가 젊다고 그러던데, 아직 미혼이라는 말도 있고.”' “정말이야, 유 간호사?”' 최 간호사가 말했다.' “유 간호사, 새로 올 의사한테 관심 많구나.”' 미영이 놀리듯 말했다.' “그럼요. 관심 없다면 내숭이죠. 이 정도라면 나에게 프러포즈 할지 모르잖아요?"' 유 간호사가 장난스레 턱을 치켜들고 섹시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애 딸린 유부남이거나 잘나가는 애인 둘 쯤 꿰차고 있을 확률이 백 퍼센트 일 텐데 유 간호사, 너무 앞서가는 거 아냐?”' “앞서가서 기다렸다 확 잡아채 보죠 뭐!”' 유 간호사는 손으로 무엇인가를 확 잡아채는 시늉을 해 보였다. 미영은 간만에 유쾌하게 웃었다. 한창 웃음소리로 소란스러울 쯤 병원 문을 열고 당당하게 들어서는 한 남자가 있었다. 남자는 그녀들을 향해 넙죽 인사를 하면서 경쾌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반갑습니다. 출발이 좋을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인사드리죠. 이번에 병원을 맡아서 여러분과 함께 배를 출발시킬 선장, 강재민입니다.”' 뜨악한 표정의 세 여자는 동시에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남자에게 시선을 모았다. 미영은 강재민이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귀가 움찔거렸다. ' ‘강재민? 어디서 많이 듣던 이름인데……?’' 미영은 남자의 얼굴을 슬쩍 훑어보았다. 설마 그 녀석은 아니겠지……강재민이라면, 미영은 자신도 모르게 남자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유일하게 생체거부를 느끼는 남자의 이름. 동명이인이겠지. 미영은 그렇게 생각했다. 이름만 같아도 불쾌감이 전이 되는 것일까. 미영의 얼굴은 목각인형처럼 굳어져 버렸다.' 남자는 대기실을 휘익 둘러보더니 잡지꽂이 앞에서 발을 멈추고 비뚤게 꽂혀 있는 여성잡지 하나를 똑바로 세워 놓았다. 잠시 침묵이 여자들 머리 위로 나비처럼 내려앉았다. 남자의 구둣발소리만이 정적을 깨고 미영의 귀를 자극했다. 미영은 남자를 지켜보다가 이내 시선을 바닥에 깐 채 기억 속을 헤집었다. 강, 재, 민……. ' 잠시, 남자는 상담실 쪽으로 발길을 돌리더니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