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개나리 아파트’'군데군데 금이 간 데다 페인트는 칠이 벗겨져 내린, 도대체 언제 지어졌는지도 알 수 없는 연립주택.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당하게 아파트란 이름을 내 걸고 있는, 다 쓰러져 가는 건물을 올려다보는 정현의 얼굴에는 어떤 표정도 나타나 있지 않았다. '이삿짐을 옮기는 인부들이 그가 가져온 세간들이 너무 고급스러워 좁아터진 입구로 들어가기가 수월찮다며 투덜대는 소리에도 정현은 그저 말없이 벽걸이용 액자를 조심스럽게 옮겨다 놓을 뿐이었다. '이삿짐 차 주위로 동네 꼬마들이 잠깐씩 호기심 어린 얼굴을 들이밀었다가 인부들의 저리 가라는 호통에 조금 떨어져있는 놀이터로 몰려가 버렸다. '정현은 거의 다 옮겨져 가는 이삿짐을 바라보며 가슴 위 포켓에 챙겨두었던 담뱃갑을 꺼내 한 개비를 입에 물었다. 인부 하나가 쑥스러운 표정으로 그에게 다가와 담배 한 개비를 동냥했다. '“한 대만 주슈. 이거 원, 여기 오기 전에 한 갑 산다는 게 깜빡 했지 뭐요.” '정현은 입에 문 담배를 얼른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담뱃갑 채로 나이든 인부에게 내밀었다. '“나눠 태우세요. 저는 저 위에 새 담배가 있습니다.” '선뜻 자신의 담배를 건네는 그를 향해 앞니 하나가 빠진 인부는 횡재라도 한 양 신이 나서 껄껄거렸다. '“아, 이거 그래도 돼? 아직 새 거 구만.” '말은 그렇게 하면서 얼른 담배를 자신의 포켓 속으로 챙겨 넣는 인부를 보며 정현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네. 수고 많으셨습니다. 큰 짐 대충 옮기셨으면 가 보세요. 저 혼자 천천히 정리하면 되니까요.” '각기 담배를 한 개비씩 나눠 문 서너 명의 인부들은 손사래를 치며 한마디씩 토를 달았다. '“에이, 그럼 쓰나? 돈 받아먹은 값은 해줘야지. 걱정 마시게. 젊은 양반. 냉장고부터 시작해서 숟가락, 똥 묻은 빤스까지 다 챙겨 넣어줌세. 하하하하하.” '실없는 농을 던진 나이 든 인부의 말에 함께 일하던 나머지 사람들도 다같이 웃음을 터뜨렸다. '“똥 묻은 빤스가 왜 나와? 애가 있는 것도 아니고. 젊은 양반 혼자 사는 것 같구먼.” '그보다는 조금 젊어 보이는 인부가 정현의 단출한 살림살이를 보며 말을 꺼내자 게걸스럽게 웃어대던 인부들은 무엇을 눈치 챈 것인지 다들 작정한 것처럼 동시에 웃음을 멈추고 태우던 담배를 조금 전 마셨던 피로회복제 병 속에 털어 넣은 채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자. 일들 하자구. 이제 저 옷장이랑 식탁이랑만 옮기면 큰 건 다 들어간 거지?” '정현은 인부들의 말을 못들은 척 묵묵히 태우던 담배를 바닥에 부벼 끄고 옷상자를 안은 채 2층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대충 세간들이 자리를 잡고 구석구석 들어앉자 어느 정도 사람 사는 집 같은 느낌이 들어 정현은 거실 겸 부엌에 주저앉아 피곤에 지친 몸을 쉬게 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새로 도배되어진 벽에 정성스럽게 못질을 한 후 결혼사진을 걸어 놓은 것이었다. '사진 속의 수미가 행복한 표정으로 정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현은 마른 헝겊으로 금방 털어 낸 사진을 다시 한 번 훑으며 조용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초라하지? 그래도 너랑 나랑 둘만 살기엔 이 정도 크기가 적당하잖냐. 저번 집은 너무 휑해서 너도 싫다고 했었지? 조금만 있어 봐. 금방 정 들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