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며칠 만이냐?”'“뭐가?”'아무래도 경이 자신의 타박에 방긋 웃어 주었던 게 기분이 나빴던 모양이다.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자마자 알 수 없는 질문을 하는데 어감이 좋지 않다.'대학 다니면서도 이상하게 삐걱거릴 일이 많았던 남희.'경은 가끔 남희와 자신이 친구로서 궁합이 맞지 않는 건 아닐까 생각해 보곤 했다. 누가 잘하고 잘못한 것이 아니라 인력으로는 어쩔 수 없는 궁합. 삐걱대는 일이 잦아지니 속내를 털어놓지 않았고 지금처럼 여럿이 모일 때가 아니면 개인적으로 만나지 않았다.'“머리 며칠 만에 감았냐고? 아직 물기도 다 안 말랐다. 안 봐도 비디오다. 너 외출할 때 아니면 머리도 안 감지? 외출할 일이 없을 테니까 그냥 버텼을 거고. 오늘 저녁에 약속 있다니까 시간 다 되어서 부랴부랴 감았으니 제대로 말리지도 못하고 나왔을 거고. 너, 큰일이다. 어쩌려고.”'아, 이 계집애 귀신이네.'남희가 돌리지 않고 직설적으로 표현한다면 경은 웃으면서 싫은 소리 할 줄 아는 사람이다. 경도 알았다. 자신도 잘하는 거 아니라는 것을. 하지만 유난히 져 주고 싶지 않은, 그냥 넘어가지지 않는 사람이 있다.'경이 한 소리 하려는 찰나, 늘 그래 왔듯이 진선이 나섰다.'“유남희, 집에 있으면 다 그렇지. 안 그런 사람이 어디 있냐? 저도 저번 연휴에 머리 떡이 져 가지고 있었으면서. 그리고 내가 천천히 나오라고 했어. 그만 쪼아.”'친구들 사이에서 가장 사리분별 확실하고 틀린 소리 하지 않는 진선의 말에 남희의 말끝이 흐려졌다.'“내가 언제 쪼았다고…….”'이번에는 처음 분위기부터 매끄럽지 않고 삐걱거리는 것을 감지한 승혜가 큰 소리를 쳤다.'“이놈의 기지배들 진짜! 오늘 내가 큰 맘 먹고 한 턱 내겠다는데 어디서 앙탈들이야!”'승혜의 한 소리에 모두 입을 다물었다. 승혜가 한 턱 내는 날이다. 돈 낼 사람 심기는 절대 거스르지 않을 만한 이성이 나머지 세 사람 모두에게 아직 남아 있었다.'“야, 진짜 남의 돈 먹는 일이 쉬운 일 아니라는 건 알았지만 정말 하루에도 몇 번씩 부장 머리통 휘갈기고 싶을 때가 있다. 이제 겨우 두 달인데 한 몇 년은 다닌 거 같다.”'이 자리에 모인 가장 큰 이유인 승혜가 넋두리를 시작했다. 취업 잘됐다고 좋아했던 승혜도 마냥 좋지만은 않았던 모양이다. 경도 직장 생활이라는 것을 해 보았지만 그 기간이 너무 짧았고 또 현재는 직업도 없으니 뭐라고 끼어들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그저 친구들의 얘기를 들으며 술과 안주만 축내고 앉아 있었다.'“그래도 부장 빼고는 다 좋다며? 연봉도 세고 결혼하고도 다닐 수 있다며. 우리는 결혼하면 조용히 나가 줘야 하는 분위기야. 사규에 결혼하면 잘린다, 하는 조항은 없는데 분위기를 그렇게 몰아가는 거지.”'“그런 것도 안 좋으면 내가 그걸 참고 보겠냐? 그런데 너네 그러면 저번에 결혼한다는 네 사수는 어떻게 됐어?”'승혜와 남희 사이에 오가는 얘기는 경은 처음 듣는 얘기였다. 승혜의 회사 부장 얘기도, 진선이 기혼녀는 환영받지 못하는 회사 분위기에 고민하는 것도 모두 처음 듣는 얘기였다.'“뭘 어떻게 돼? 진선아, 네 선배 그때 바로 사직서 냈다고 그러지 않았냐?”'남희도 진선의 상황을 알았나 보다. 남희의 질문에 진선이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아니, 결혼하면 하던 일을 안 하니, 아니면 월급을 더 올려 달라고 하니? 회사에 피해 주는 것도 아닌데 지레 회사에 충실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고 사람 밥줄을 끊어 놓으려고 한다니! 진짜 웃긴 것들이야. 지들 와이프도 결혼한 여자고, 지 여동생도, 자기 딸들도 결혼한 사람들인데. 어쩜 그러니!”'승혜가 자신의 일처럼 열을 냈지만 경은 한마디도 거들수가 없다. 세 사람은 이렇게 저렇게 서로 듣고 얘기해 아는 것을 경만 알지 못했다. 그게 무슨 얘긴데, 라고 묻기에도 애매한 상황이다. 그리고 자신이 꿔다 놓은 보릿자루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를 초라하게 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지 말자, 하며 대화에 끼어들 타이밍을 엿보는데 쉽지 않았다. 점점 겉돌았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그리 많지 않은 주량을 초과했다.'“얜, 여전히 안주발 세우네. 그만 좀 먹어.”'아, 이게 진짜! 오늘은 안주 거의 안 먹었어. 그리고 네가 뭔데 사람 먹는데 쫑알대!'술이 덜 들어갔나 보다. 이쯤 되면 먹는 것을 가지고 또다시 딴죽을 거는 남희를 향해 욱, 하는 마음이 사정없이 쏟아져 나와야 하는데 아직도 이성이 남아 있어서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막고 있었다.'“어쩌지?”'잠깐 화장실에 다녀온다는 승혜가 자리에 앉자마자 난처한 얼굴을 한다.'“우리 그이가 데리러 온다네? 친구들이랑 있다고 했는데, 3차까지 간다고 했는데 안 된다고 너무 늦으면 위험하고 또 내 얼굴로 돌아다니면 남자들이 꼬인다고 안 된대. 기다리라네. 바로 날아온다고.”'이걸 그냥! 우리 그이? 남자들이 꼬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