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들이 처음으로 만난 날은 목요일이었다. '코끝을 찌르는 고광나무의 꽃향기가 바람결에 묻어나고, 부드러운 꽃잎이 한 잎, 두 잎 춤을 추며 날아다니는 나른한 오후 무렵, 7살 동갑내기 정이수와 이수선은 처음으로 만났다.'“이수야. 이 친구의 이름은 수선이야.”'고운 미색 원피스를 입은 오숙희가 부드러운 음성으로 속삭였다. '“수선이는 눈이 너무 예쁘게 생겼지? 그리고 보니 너희들은 이름도 비슷하구나. 정이수와 이수선!” '아들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무릎을 굽혀 말하는 엄마의 다정함에도 이수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잘 봐. 수선이의 눈은 반짝반짝 빛나는 별을 닮았고, 코는 작은 밤톨같이 생겼어. 빨간 입술은 우리 이수가 좋아하는 딸기 같아. 어때? 정말 예쁘지? 이렇게 예쁜 수선이가 오늘부터 우리 집에서 함께 살 거야.”'숙희가 조금 더 높은 목소리로 설명했지만 아들의 무표정한 얼굴에는 어떤 변화도 나타나지 않았다. 숙희의 눈빛이 안타까움으로 인해 잠시 흐려졌지만, 그녀는 재빨리 우울한 기분을 떨쳐 버렸다. '“수선이는 이수랑 함께 놀아줄 친구야. 이제부터 유치원도 함께 갈 거야.”'잠시 말을 멈춘 숙희가 아들의 머릿결을 쓰다듬었다. 결 고운 머리카락을 만지는 손가락 끝이 바르르 떨려온다. '“수선이는 우리 이수와 친구가 되어 준다고 약속했어. 앞으로 수선이를…… 절대 잊어버리면 안 돼. 알았지?”'자꾸만 치밀어 오르는 속울음을 애써 삼키며 씩씩하게 말하는 엄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땅바닥만 쳐다본다.'숙희의 아들 정이수는 사람의 얼굴을 구별하지도 알아보지도 못했다. 거기다 성격도 내성적이라 유치원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고 선생님과도 잘 지내지 못했다. 자폐아처럼 온종일 외톨이로 지내는 이수를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변화를 싫어하는 아들 덕에 사람 들이는 문제 하나도 조심스러운 와중에 몇 년 동안 집안일을 봐주시던 도우미 아주머니가 그만두게 되었다. 그런데 새로 들어올 입주 가정부의 딸아이가 이수와 동갑이라고 했다. '“안녕하세요? 아줌마. 저는 이수선이라고 합니다. 7살이에요.”'엄마의 손을 잡고 들어 온 수선은 오동통한 얼굴에 밝은 미소를 띤 채, 커다란 포물선을 그리며 인사를 했다. 환한 햇살같이 빛이 나는 아이였다. '“안녕. 네가 수선이구나. 반가워. 아줌만 오숙희라고 해. 우리 잘 지내자.”'숙희가 작고 포동포동한 수선에게 악수를 청하자 어린 수선이 키득거리며 손을 마주 잡았다. 뭉클하고 따뜻한 느낌이다. 숙희는 숲 속 꼬마요정 같은 수선의 웃음에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이수가 저 아이의 환한 빛을 조금만 나누어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저렇게 밝은 아이와 어울리다 보면 우리 이수도 조금은 명랑해지지 않을까? 이런 상상만으로도 그녀의 마음은 부풀어 올랐다. '“아줌마에게도 7살 난 아들이 있어.”'“우와, 7살이요? 그럼 아줌마 아들이랑 저랑은 친구예요. 친구끼리는 사이좋게 지내야 하는 거라고 선생님이 그러셨어요.”'“어머나, 쟤가…… 이수선!”'부엌을 둘러보고 나오던 김은영은 주인집 사모님과 악수를 나누고 있는 딸아이의 당돌함에 어찌할 바를 몰라 쩔쩔맸다.'“죄송해요. 사모님. 아이가 버릇이 없어서요. 수선아, 사모님께 그럼 안 돼.”'은영의 사과에 기가 죽은 수선을 보고 미안해진 쪽은 오히려 숙희였다. '“아니에요. 그런 말씀 마세요. 애가 너무 영리하고 예뻐요. 아줌마, 수선이 우리 이수와 같은 유치원 보내면 안 돼요? 걔가 수줍음이 많아서 친구들과 잘 못 사귀거든요. 수선이가 함께 유치원도 다니고 친구도 되어주고, 그럼 좋겠어요.”'숙희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은영이 난처한 듯 머뭇거렸다. 혼자서 벌어 먹고살기도 빠듯한 입장에 저소득층을 위한 어린이집이라면 모를까, 비싼 유치원은 무리였다. 그녀는 숙희의 제안을 조심스럽게 거절했다. '“사모님. 죄송합니다만 저흰 형편이 안 돼요.”'“아, 이런, 제가 실수를 했네요. 부탁하는 입장인데, 당연히 수선이 유치원비는 저희가 대야죠. 아주머닌 걱정 마시고 그냥 수선이에게 우리 이수와 잘 지내라고 말만 해주시면 돼요. 다른 건 아무것도 안 바라요. 그냥 같이 놀아주기만 하면 돼요.” '아들에게 친구를 만들어 주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통한 것일까? 거듭되는 숙희의 부탁에 은영은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어머니들에 의해 유치원 동기생이 된 수선과 이수가 바로 오늘 만나게 된 것이다.'“안녕? 난 수선이야. 이수선! 우리 앞으로 친하게 잘 지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