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롤로그''''하늘이 너무나 파랗다. 마치 가을처럼 푸르고 깨끗한 하늘을 보고 있자니 한겨울의 추위가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한여름에 땀띠와 씨름을 해가며 고생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겨울이라니. 시간이 얼마나 빠른 것인지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매년 이렇게 혀를 내두르게 되는 것이 참 우습게 느껴졌다. ' “수고하셨습니다.”'인영은 뒤늦게 코스를 빠져나온 남자를 돌아보면서 인사를 했다. 희끗희끗한 머리에 50살이 훨씬 넘어 보이는 중년의 남자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이제 막 언덕길을 다 오른 참이었다. 아마 날씨가 춥지 않았더라면 그의 이마나 코끝에는 땀방울이 한가득 맺혀있었을 것이다. ' “후…… 언니야. 나 오늘 얼마나 쳤지?”'남자가 장갑을 벗어서 뒷주머니에 대충 찔러 넣으며 물었다.' “총 92타 치셨으니까 20오버파네요.”' “그래? 늙어서 그런가. 어찌된 게 실력이 늘지를 않어.”' “클럽을 길게 잡으시는 버릇만 고치셔도 훨씬 좋아지실 거라니까요.”' “나도 머리로는 알지. 근데 한번 들인 버릇이 좀처럼 고쳐져야 말이지.” '나이 지긋한 남자의 푸념을 들으며 인영은 클럽의 개수를 확인했다. 드라이버 1개, 우드 2개, 아이언 9개, 퍼터 1개 모두 제자리에 있는 걸 확인한 인영이 검은색 골프백 앞주머니에서 머리 부분의 커버를 꺼내 백을 완전히 봉했다. “날도 추운데 수고했어. 확실히 사람들이 많이 줄었지? 손님이 줄면 언니들 수입은 어쩌나?”' “뭐 겨울엔 쉬는 캐디들도 많구요. 아니면 다른 일이랑 같이 하는 사람들도 꽤 있어요.”' “하긴. 그래야 될 거야. 자 여기 캐디피.”' “감사합니다. 추운데 고생하셨어요.”'인영은 남자로부터 캐디피를 받아 조심스럽게 반으로 접어 상의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아무래도 오늘 라운딩은 여기서 끝날 듯싶었다. 찬바람이 불면서 잔디와 나무는 다 말라버렸고 호수도 예전만큼 아름답지가 못했다. 겨울이 되면 골프장은 거의 휴식기에 접어든다. 사람들은 대부분 캐디들이 돈을 많이 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그녀들의 주머니 사정은 그다지 여유롭지가 못했다. 한 달에 한번 월급처럼 몰아서 받으면 꽤 큰돈이 되겠지만 적게는 6만원에서 운이 좋으면 20만원까지 그날그날 받아가다 보니 어디로 새는지도 모르게 돈을 써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아무래도 주머니에 돈이 들어있으면 저도 모르게 지갑을 열게 되는 것이 사람이니까. '간혹 번 돈을 바로바로 은행에 입금시키는 사람들도 있는데 대부분 큰 빚을 져 그 이자나 원금을 갚느라 제대로 돈을 만져보지도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정말로 고스란히 돈을 모아 목돈을 만들고 있는 사람은 그 많은 캐디들 중 한두 명 정도였다. ' “오늘은 꼭 샤워하고 가세요. 아무리 날씨가 쌀쌀해도 알게 모르게 땀을 많이 흘리셨을 거예요. 감기 드시면 안 되잖아요.”'인영이 빙긋이 웃으며 백을 오른쪽 어깨에 둘러맸다. 그 바람에 노란색 캐디가운이 목 쪽으로 밀렸지만 백의 무게 때문에 바로잡기에는 좀 무리가 있었다. ' “알았어. 아무튼 내 건강 걱정 해주는 건 언니밖에 없다니까. 우리 마누라보다 더 나아. 하하하!”' “에이. 아무렴 제가 사모님보다 나으려고요. 다음엔 날씨 풀리면 사모님이랑 같이 오세요.”' “그래. 알았어.”'남자가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겨 클럽하우스로 들어가는 걸 확인한 인영은 몸을 돌려 주차장으로 향했다. 방금 전까지 인영과 코스를 돈 중년의 남자는 매번 인영을 찾는 손님들 중 한명이었다. 상냥하고 인상이 밝은 인영은 오랫동안 이 한성레이크C.C에서 일을 하기도 했지만 가장 실력이 뛰어난 캐디이기도 했다. 특히 모든 코스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그녀의 조언은 손님들이 보다 좋은 성적을 내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