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고 맑은 5월 오후, 수업이 끝난 국문과 강의실에는 묘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수업이 끝나기 무섭게 국문과 강의실로 돌진해 들어오는 K대 최고의 킹카 정윤후의 모습에 강의실에 남았던 사람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그에게로 쏠렸다.'강의실 제일 안쪽에 앉아 수업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책을 읽고 앉아 있는데 종희에게 바쁘게 걸음을 옮기는 윤후였다. 그런 윤후의 모습에 구경을 하는 사람들의 눈빛엔 호기심이 어렸다.'“또 고백하는 건가?”'“그런가 봐.”'“이번이 백 번째지?”'“그럴걸. 이번에도 윤종희가 거절하려나?”'“아마도 그러지 않을까?”'라고, 자기들끼리 조용히 속삭이며 윤후와 종희의 모습을 흥미진진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이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 두 사람은 이렇게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일까? 그 뒷배경은 이렇다.'정윤후, 그는 연영과 2학년에 재학 중이며 K대 최고의 킹카로 군림하고 있었다. 워낙 독보적인 외모 덕분에 수없이 많은 여자들이 그에게 대시, 바람기가 많은 건지 아니면 거절하는 게 귀찮아서 대충 사귀는 건지 대시하는 여자들이 많은 만큼 무수히 많은 교제 횟수를 기록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어떤 여자와도 교제가 길게 이루어지진 못했다. 윤후의 무관심에 지친 여자들이 제 풀에 지쳐 그의 곁을 떠나곤 했던 것이다.'그런데 그런 정윤후가 어느 순간부터 모든 여자의 교제 신청을 거절하고 오직 종희에게만 집중을 하고 있었다. 그것도 일방적으로 따라다니면서. 그렇다면 과연 윤종희는 어떤 여자인가?'국문과 2학년. 155cm의 작은 키에 전체적으로 자그마한 체구를 가지고 있으며, 무척이나 앳돼 보이는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얼굴이 귀엽게 생기긴 했지만, 지극히 평범한 외모라고 할 수 있었다. 다만 웃을 때 자그마한 눈이 더 자그마해지면서 번지는 눈웃음이 꽤나 매력적이긴 했다.'하지만 킹카인 윤후가 이렇게 열심히 따라다닐 매력이라고까진 말할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정윤후가 어떤 인간인가? 천상천하유아독존. 멋에 살고 멋에 죽고, 남자에겐 폼이 제일 중요하다고 울부짖는, 한마디로 폼 나지 않은 일을 가장 싫어하는 인간이었다.'그런데 그렇게 중요하다 울부짖던 폼이 구겨지는 일을 벌써 백 번째 시도하는 윤후였다. 그러니 사람들의 관심이 어찌 쏠리지 않겠는가? 과연 정윤후의 백 번의 대시에도 불구하고 윤종희가 거절을 하느냐! 이게 사람들의 초미의 관심사였다.'물론 종희는 사람들이 이 일에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사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질문을 받곤 했었다. 도대체 왜 벌써 십 년 넘게 알아온 제일 친한 친구이자, K대 최고의 킹카인 윤후의 고백을 그렇게 냉정하게 거절하는 거냐고. 그런 사람들의 대답에 종희는 그저 미소로 대신 답을 했을 뿐이었다. 진정한 속마음은 아직 그 누구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으니까. 아니, 들키면 안 되었으니까.'자신 앞에 멈춰 서서 비장한 얼굴로 책상 위에 두 팔을 뻗는 윤후를 종희는 무심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사귀자.”'“싫어.”'그리고는 이를 악물며 내뱉는 윤후의 고백답지 않은 고백에 종희는 이제 대답하기도 귀찮다는 듯 낮게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또다시 종희의 입에서 나온 거절의 말이 충격이었는지 윤후의 커다란 눈이 가느다랗게 변해가고 있었다. 하늘을 닮은 듯한 갈색 빛의 맑은 눈동자가 흐려지는 이 변화를 지켜보는 건 종희에게는 꽤 즐거운 일이었다. 자신의 말 한마디에 정윤후로부터 이런 반응을 이끌어낸다는 건 꽤 흥미로운 일이었으니까.'“왜 싫어?”'“싫으니까.”'살짝 화를 식히며 물어오는 윤후의 신경질적인 말에 종희는 무심한 말투로 대답했다.'“왜?”'“그 이유 벌써 백 번은 말한 것 같은데?”'인상을 찌푸리며 목소리 끝을 살짝 올리며 하는 종희의 말에 윤후는 애써 분을 삭이며 자신의 짙은 까만 머리를 신경질적으로 넘기고 있었다.'“너 정말 나 싫어?”'천하의 정윤후를, 그를 아는 모든 여자들이 어떻게 한 번 해볼까 안달하는 자신을 거절한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는다는 말투였다.'“싫어.”'“왜?”'“또 말해?”'살짝 한숨을 내쉬며 묻는 종희의 말에 윤후는 매섭게 그녀를 바라보며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너 잘난 것도 싫고, 네 추종자들한테 괴롭힘 당하기도 싫고, 네 왕자병도 싫고, 네 멍청한 머리도 싫고, 네 큰 키도 싫고, 네 지랄 맞은 성격도 싫어. 됐어? 한마디로, 애인으론 너 절대 싫어!”'벌써 백번 가까이 듣는 말일 텐데 윤후는 매번 종희의 이런 말에 커다란 몸을 휘청거렸다.'“도대체 뭐가 잘났다고 그렇게 튕겨? 얼굴도 못생기고, 키도 짜리몽땅하고, 성격도 나쁘면서! 그나마 머리 좋은 거 빼곤 잘난 것도 없으면서!”'애써 참아왔던 말을 종희를 향해 터트린 윤후는 잔뜩 화가 난 듯 씩씩거리며 국문과 강의실 걸어 나갔다. 하지만 윤후에게 그런 말을 듣는 게 익숙한지 종희는 어깨를 살짝 올렸다 내려놓을 뿐 표정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그런 윤후가 귀여워서 견딜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