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우 어디 있어? 정승우!”'현관문을 부실 듯 박차고 들어온 민우가 전부치는 냄새가 진동하는 거실에 서서 고함을 질러댔다. 벌겋게 상기된 얼굴에 거친 숨. 팔뚝 중간까지 접힌 셔츠 소매와 느슨하게 풀어진 넥타이가 단정하지 않은 그의 심기를 대변하고 있다.'“어머, 민우야. 너 왜 그러니?”'제사 준비를 하다 아들의 고함소리에 놀라 주방에서 뛰어나온 서 여사가 다가와 물었지만 민우는 어머니의 물음 따위 들리지 않는다는 듯 조금 더 안으로 걸어 들어와 다시 고함을 치기 시작했다. '“정승우 빨리 안 나와?”'“무슨 일이냐?”'“승우, 이 자식 어디 있습니까?”'주방에서 나온 영미가 예의라고는 눈을 씻고 찾으려야 찾을 수 없는 민우의 무례함에 한숨을 뱉었다. 작은댁 큰조카는 아무래도 이곳이 어딘지, 오늘이 무슨 날이지,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 잊어버린 모양이다. 영미는 무례한 민우의 행동을 엄하게 꾸짖고 싶었지만 달려와 쩔쩔매는 동서를 보고 참았다. '“얘가 여기가 어디라고 왜 이리 소란이야? 니 댁은 어떻게 하고 너 혼자 온 거야? 오늘 무슨 날인지 알고나 있는 거야? 내가 그렇게 신신당부를 했는데 쯧쯧, 갠 어쩜 그리 쌀쌀 맞니?”'“모르시면 가만히 계세요. 승우 어디 있어요, 지금!”'서 여사가 얼른 화제를 돌려 보려 했지만 민우의 흥분을 가라앉히기는커녕 핀잔만 들었다. 안 그래도 도도하기가 하늘을 찌르는 형님 앞에서 제 아들에게 당한 무안에 서 여사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렇게 흥분해서 승우를 찾는 이유가 뭐니?”'영미가 물었다. '“둘이 할 얘깁니다. 지금 2층에 있습니까?”'영미는 제사 때문에 오랜만에 집에 온 승우의 심기를 어지르고 싶지 않아 2층으로 향하려는 민우를 막아섰다. '“소란 피우지 말거라.”'“큰어머니께서 상관하실 일이 아닙니다.” '평온하던 영미의 미간이 좁혀졌다. '“내 아들 일에 애미가 상관하지 않으면 누가 상관한다는 말이니? 그리고 네가 잊은 것 같아서 말해주는데 오늘은 네 할아버님 기일이다. 여긴 할아버지 제사를 지낼 곳이고, 이런 소란 내가 용납할 수 없어. 할 얘긴 제사가 끝나고 해도 늦지 않아. 그러니 화를 죽이고 큰 아버지께 먼저 인사 여쭈거라. 큰아버지 서재에 계신다.”'“제 얼굴 안 보이십니까? 버릇없다고 해도 지금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니 어서 비키세요, 큰어머니.”'“큰어머니? 네가 지금 날 큰어머니로 생각하고 이런 행동을 하는 거야? 그리고 지금 네 말버릇은 그게 뭐지? 흥분하면 위도 아래도 없는 거야?”'“큰어머니!”'“다시 말하지만 오늘 같은 날 집안에서 큰소리 오가는 거 내가 용납 못한다. 너희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내가 일일이 참견할 일은 아니지만 오늘 만큼은 두고 볼 수 없구나. 그러니 화를 삭이고 큰아버지께 인사를 드리던지 아니면 이 집에서 당장 나가던지 둘 중에 하나 택해야 할 거야.” '“어머, 형님!”'아무리 무례하게 소란을 일으킨 아들이라도 자식을 엄하게 꾸짖는 영미가 못마땅한 서 여사가 참다못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승우였다면 현우였다면 저렇게 했을까 싶은 생각에 서럽기까지 했다. 아무리 아버님 살아생전에 인정받지 못한 조카라도 이런 무시는 너무 분하고 억울하다. 어린애도 아니고 승우보다 세 살이나 많은데다 결혼해서 처자식이 있는 장성한 조카를 어떻게 일곱 살 먹은 아이 나무라듯이 저럴 수가 있는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아랫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그리 모질게 이러 실수가 있어요? 서운하네요, 형님. 톡 까놓고 말해서 얘가 괜히 이러겠어요? 승우가 잘못한 일이 있으니까 이러는 거겠죠. 전후 사정도 안 들어 보시고 무조건 나무라시는 건 형님이 과하신 거 같네요. 더구나 제가 보는 앞에서 장성한 아들을 나무라는 건 곧 저를 무시하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형님한테 정말 서운하네요.”'저것도 역성이라고 들어주는 동서로 인해 영미의 입에서 한숨이 뱉어졌다. '“내가 지금 승우 역성을 들던가? 전후 사정이야 어떻든 무조건 승우 편에서 민우를 나무라고 있는 것으로 보이느냔 말이야. 잘 보게. 지금 이 소란은 승우가 아니라 민우가 일으키고 있고, 난 아버님 기일에 이런 무례한 행동을 나무라고 있는 거야. 나이가 얼마든 무례한 행동을 꾸짖는 건 어른의 도릴세. 이건 누구든 예외는 없어. 난 우리 집안의 맏며느리고 내 집안이 막돼먹은 집안이 되는 걸 막을 책임이 있어. 내가 잘못한 건가?”'“막돼먹은 집안이라니요……? 형님께서 그런 말씀 하실 입장이…….”'비꼬는 것이 확실한 서 여사의 말에 영미의 화끈 달아올랐다.'“자네 지금 한 얘기에 저의가 뭔가?”'“그만하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