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둘째 주 금요일 오후. 대학 들어와서 처음으로 오후 수업 전부(전부라고 해봤자 두 개였지만)를 땡땡이 치고 태희는 재경과 꽃놀이를 갔다.'한참 전부터 태희가 꼭 가보고 싶다고 했던 춘천 위도를 목적지로 정해놓았었는데 날짜가 가까워졌을 무렵 문득 태희가 엄마랑 꽃놀이 하러 간 게 언제인지 모르겠다고 슬픈 얼굴을 한 게 재경의 마음에 걸렸다. 둘이서만 가서 일박쯤 하고 오는 게 재경이 원하는 바였지만 태희를 기쁘게 해주려고 어머니까지 모시고 당일치기로 다녀오자고 태희에게 말했다. 그 제안에 태희가 얼마나 기뻐하던지, 말을 꺼내지 않았다면 두고두고 후회할 뻔 했다고 생각하며 재경은 자신을 기특해 했다.'그러나 당일이 되자 재경의 흡족함은 거짓말처럼, 그야말로 거짓말처럼 자취를 감추었다.'오전 수업을 마치고 태희와 함께 태희 어머니를 모시러 간 장소에서 불청객 두 사람을 보자마자 그는 망치로 뒷머리를 얻어맞은 것처럼 멍해졌다. 태희의 어머니 말고도, 뭔가 큰 배낭을 들고 히죽히죽 웃고 있는 재인과 꽃놀이가 아니라 피서를 가는 양 현란한 차림의 소희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재경을 향해 낄낄낄 웃어댔다.'“기특하구나! 그래그래. 장모 사랑은 사위지. 흐하하하, 한 기사 운전 잘해! 얌마, 넌 뭘 그리 멀뚱히 서 있어? 차 왔으니 짐 싣고 어서 넌 앞으로 타란 말이야. 뒷자리 좁다. 어머니, 어서 타셔요오―.”'소희는 알아서 척척 차 트렁크를 열고 재인에게 짐 싣기를 명령한 뒤 바로 차 뒷문을 열어 태희 어머니를 타게 했다. 물론 태희는 함께 데리고 냉큼 뒤에 가서 셋이 탔다. 엉겁결에 재인과 차밖에 남은 재경이 차안에서 보이지 않게 자세를 잡은 뒤 재인을 보며 전혀 눈이 웃지 않는 미소와 함께 물었다.'“넌 여기서 뭐하냐?”'“짐꾼입니다. 흐흐흐.”'“학교 안 가? 막장이냐?”'“아파요. 콜록콜록. 전 몸이 약해서.”'“기도 안 차서.”'과장된 연기와 함께 비틀거리는 재인을 보며 관자놀이에서 혈관이 터지려는 느낌을 간신히 수습한 뒤 재경은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방금 전에 재인에게 들려준 시베리아벌판 같았던 목소리와 백팔십도 다른 목소리로 태희 어머니를 보며 말했다.'“춘천 가셔서 드시고 싶은 건 생각해 두셨어요? 아니면 가시면서 생각하셔야 해요.”'“아, 걱정 마. 어머니가 김밥도 싸시고 닭갈비도 만드셨다는 거 아니냐. 태희 어머니 솜씨 발휘 하시면 대장금이 따로 없다. 우리 엄마랑은 천지차이야.”'“저런. 기대는 되는데, 기왕 놀러가는 거 그냥 오시지. 잠깐 구경 가는 걸로 오히려 더 고생시켜드린 거 아닌가 싶어요.”'“아, 아니…. 오랜만에 놀러가는 거라 괜히 이것저것 만들어 봤어. 젊은 사람들 노는데 끼면 꼴이 우스워 보일까봐 안 오려고 했는데, 태희랑 소희가 워낙 매달려서. 주책없다고 욕하지 말게.”'태희의 수줍어하는 성격이 누구에게서 온 건지 몇 번 안 봤어도 훤히 알 수 있다. 소녀처럼 손으로 입을 가리고 말하시는 어머니를 향해 재경은 너무도 부드럽게 웃었다.'“그렇게 생각할 거면 함께 가자는 말씀도 안 드렸을 걸요. 태희가 어머니와 함께 가는 걸로 아주 기뻐했어요. 태희가 기뻐하면 저도 기쁘구요. 제가 얼마나 태희에게 전전긍긍하는지 어머니께 말씀 안 드렸나 봐요.”'“맞아요, 어머니. 태희가 재경일 꽉 잡고 있답니다. 완전히 공주마마예요.”'재경의 말에 한 술 더 떠서 소희가 잽싸게 속삭이자 태희 어머니는 놀란 표정으로 자신의 딸을 보며 물었다.'“우리 애가 그럴 애가 아닌데….”'“아니야, 엄마. 소희는 허풍선이잖아. 나 재경이 안 잡아. 공주마마도 아니야.”'“그럼 네가 잡혀 사냐? 아님 네가 재경이 하녀란 말이야?”'“아니, 그런 말도 아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