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린 세진은 잠이 든 예경을 차에 둔 채 밖으로 나왔다. 금방이라도 내려서 돌아갈 것처럼 안절부절못해 하더니 고속도로에 차를 올린 후로는 내내 잠이 들어 깨어날 줄을 몰랐다. 차에 두고 내렸던 새 배터리를 휴대전화에 갈아 끼운 세진은 전원 버튼을 꾹 눌렀다. 띠리링거리는 신호음이 울리더니 액정화면에 문자들이 떠올랐다. 단절된 세상에서 시끄러운 인간 세상으로 돌아온 것이 그제야 실감났다. 부재 중 들어온 전화번호들이 가득했지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모두 지워 버렸다.'필요한 숫자들을 누르고 마지막으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짧은 신호음이 이어지더니 의외로 금방 상대방과 연결되어졌다.'- 인마! 너 어디야!'다짜고짜 튀어나온 고함 소리에 세진은 미간을 찌푸렸다. 혹시나 싶어 무의식중에 옆으로 고개를 돌리고서 차 안에 있는 예경의 안색을 살폈다. 문이 닫혀 있으니 들릴 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신경이 쓰였다. 하얀 얼굴에 감겨 있는 눈꺼풀을 확인하고서야 차에서 조금 떨어진 장소로 움직였다. 그 어떤 큰소리라도 예경의 귀에 들리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거리로 말이다.'“시끄러. 전화기에 대고 웬 고함을 그렇게 질러대는 거야.”'- 야, 야, 야! 초반에 민우 놈한테 덜렁 전화 한 번 하고서는 지금까지 연락 두절인 놈이 할 말이냐, 그게! 손가락이 부러졌어? 아니면 휴대전화는 국 끓여 먹었냐? 잘 있다고 연락 한 번 하는 게 그렇게 힘드냐고, 인마! 우리가 너 때문에 얼마나 고생을 바가지로 하고 있는데…….'“서울 올라가는 고속도로 휴게소다.”'가만히 내버려 두면 내일 아침까지도 잔소리를 퍼부어 댈 강재 녀석인지라, 세진은 아무 거리낌 없이 중간에서 잘라 버렸다. 아니나 다를까, 당장 다른 반응이 왔다.'- 지금?'“그래.”'- 헤에……. 우린 해 넘기고 오는 줄 알았더니, 생각보다 일찍 오네.'세진이 서울을 떠난 지 열흘이었다. 크리스마스가 다음 주로 다가와 있었고, 보름 정도만 지나면 새해였다. 그래서 연휴를 맞아 스키 타러 가는 차들이 도로를 꽉꽉 메우고 있었다. 그에 비해 그 반대 차선을 탄 세진의 차는 막힘없이 달려 나갔지만.'“너 지난번에 오피스텔 하나 얻었다고 한 거, 지금도 비워져 있는 거냐?”'- 어. 왜?'출근하기 불편하다고 사무실 근처에 오피스텔을 구한다고 난리를 부리더니, 정작 구하고서는 집이 더 편하다고 극구 집까지 오가는 강재 녀석의 행태를 민우와 주고받은 기억이 난 것은 휴게소에 막 들어섰을 때였다. 그곳이라면 일층 관리소에서부터 철저하게 외부인을 차단하는데다가, 강재의 법석에 일상 가구들까지 빠지지 않고 갖춰져 있어 당장 들어가 생활하기에 불편한 게 없을 것이다. '막상 예경을 서울로 데려가고는 있지만, 자신의 오피스텔에 둘 수는 없었다. 자신을 향해 꽂혀 있는 안테나가 하나 둘도 아니고, 거기에 예경을 노출시켰다가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일이다. 아직은 숨겨야만 했다. 일이 마무리될 때까지는. 강재의 오피스텔이라면 다른 이들의 시선을 속이기에도 편할 것이다.'“거기 전자 록 번호 좀 불러라.”'- 번호는 뭐 하게?'“말해.”'한 번도 조용히 넘어가지 않는 강재 성질에 은근히 짜증난 세진은 귀찮은 기색을 억지로 누르며 말하라고 짧게 종용했다.'- 183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