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序)''어느 기이한 나라는 언제나 태양이 항상 찬란하게 빛났다. 그 때문에 밤이란 단어는 사람들에게는 낯설면서도 존재감이 희미한 단어이며 이상한 현상에 불과했다. 그 이유는 독특했다. 한 달이라는 짧은 30여일 가운데 달을 허락하는 날은 단 두 번뿐.'즉 달이 뜨기 위해서는 밤이 되어야 하고 그 밤이 한 달에 두 번 뿐이라는 것이다. '희귀한 자연 현상으로 자리 잡혀진 밤, 그리고 밤을 장악하는 푸르스름한 달은 신비로운 광경에 지나지 않았다.'“단주님.”'녹안(綠眼)의 사내가 현명하고 지혜로운 눈빛을 빛내며 고개를 숙였다. 사내의 앞에 굳건히 서 있는 자는 범인이 본다고 할지라도 범상치 않은 기운을 가진 것을 한눈에 알아볼 정도였다. 그는 자신이 유일무이하게 충성을 다하는 자신의 주군(主君)이었다.'“무슨 일인가.”'낮은 음색에도 호소력 깊은 사내의 목소리에 녹안의 사내가 다시 한 번 깊게 고개를 숙인다. 그러나 밑으로 보이는 그의 얼굴은 좋지 않은 상황이 벌어졌음을 짐작하게 만들었다.'“좋지 않은 조짐이 느껴집니다.”'언제나 등을 보였던 사내의 주군이 뒤늦게 등을 돌려 그와 마주 보게 되었다. '“그대가 좋지 않은 조짐이 느껴진다는 것은 재앙이라도 온다는 건가?”'남자의 말은 그 누구보다도 침착하지만 충분이 신경이 서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뜻을 알고 있던 녹안의 사내는 괜한 자신의 말에 주군께서 염려가 크실까하여 걱정이 먼저 들어섰다. 그러나 이것은 그저 주군께 말하지 않고 넘어갈 일이 아니었다. 그는 말을 끊지 않고 나긋나긋하게 그렇다고 느리지 않고 정확하고 적당한 속도로 말을 했다.'“원칙으로는 내일 다님(달)이 뜨시는 서(序)보름이시건만 전혀 그럴 기운 하나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분명 황궁의 신전에서도 당황하고 있을 터, 더구나 처음 느껴 보는 요사스러우면서도 어떻게 형용할 수가 없습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녹안의 사내가 눈을 좁혔다. 더 이상 자신이 이 일에 대해서 속 시원하게 해결책을 내놓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검은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린 사내는 손을 들어 올리면서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듯이 저지를 했다. 그 동작에 녹안의 사내가 놀란 듯 눈을 크게 부풀렸다.'“그만 하면 되었다 효안. 그렇게 불안해하지 말고 하늘을 보아라.”'주군의 말에 효안이라는 이름을 가진 녹안의 사내가 주춤하며 창문 너머로 보이는 환한 태양을 향해 시선을 향하였다. 그러나 곧 눈앞에 벌어지는 기막힌 광경에 그만 당황하여도 체면과는 상관없이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곧바로 정신을 차린 효안은 다급하게 놀란 마음을 수습하긴 했으나 여전히 손이 떨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혹여 저것이 그 전설의……!”'“해다합(해와 달의 합함)이 일어나고 있으니 그런 기운을 느꼈겠지.”'지금쯤이면 저잣거리나 집 안에 있던 사람들도 난리가 났음이 분명할 정도로 큰일이건만 주군은 언제나 그랬듯이 아주 침착한 얼굴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침을 꼴깍 삼킨 효안은 어쩔 줄 몰라 서책을 찾아볼까 하고 고민을 하고 있었다.'“서책 따윈 찾아볼 필요 없다. 빤한 내용이겠지.”'주군이 등 뒤에 짐을 진채 다시 몸을 틀어서 창문가로 시선을 돌렸다. 검은 의복으로 감싸여진 단주의 넓은 등을 바라보면서 효안이 말없이 고개를 다시 숙인다.'“전설 속에서만 있는 줄 알았습니다.”'“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전설은 모두 전설로 남겨지라는 법은 없지. 또한 기록을 남겨져 있으니 더 이상 믿지 못할 게 뭐던가."'역사를 기록해 오고 있는 대전(大典)에서만 들어 보았던 해다합 현상을 떠올렸으나 그에 대한 기록이 너무 희박하여 그는 그저 전설로만 알고 있었던 일이었다. 그러나 현실에서 직접 나타난 이상 그냥 넘어가기에는 너무나도 크고 이질적인 현상임에 틀림없었다. 더구나 밤의 주인인 단주께서 그에 대한 사실을 풀어놓겠다니 더욱더 의심이 갔다.'“해다합 현상은 초승달 안에 해가 곱게 뜨는 것을 의미하지. 그렇기 때문에 그날은 어느 때 보다도 밝고 눈이 부시는 날이 된다. 그러나 해다합이 현상이 나타나는 날에는 반드시 나라를 혼란에 빠트릴 사람이 나타나리라.”'“나라를 혼란에 빠트릴 사람?”'전혀 처음 들어 보는 말에 지식에 욕심이 많은 효안이 눈을 반짝였다. 언제나 지혜롭다고 칭송을 높게 받는 당대 최고의 지식인 효안이었으나 감히 그가 알 수 없는 영역이었다.'“그렇다. 그 재인(災人)이 이곳에 나타나게 되면 자연스레 해다합의 합침은 사라지게 된다. 더 기이한 점이 있다면 이 해다합을 보게 되는 사람들은 모두 그 사람과 옷깃이라도 스치게 될 사람들일 것이다.”'단주의 말에 따르면 지금 저렇게 기이한 현상은 모두의 눈에 다 보이는 것이 아니라 곧 나타나게 될 하늘의 재인(災人)과 관련이 있게 될 사람들에게만 보인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말은 여러 가지로 해석이 되었다. 도대체 볼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다는 것인지 짐작할 수 없었다. 물론 아마 소수가 되겠지만 꼭 그럴 것이라는 확신도 없었다. 들을수록 미궁 속으로 빠져 버리는 이야기였다.'“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현상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사실을 알고 싶다면 네 능력껏 찾아라. 효안, 너라면 할 수 있을…….”'효안은 그 자리에서 곧바로 정중히 예를 갖추고 재빠르게 그곳을 빠져나갔다. 그의 발걸음을 굳이 추적하지 않아도 곧 어디로 갈 것인지는 생각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효안에게 단주라고 불리는 자. 그저 태양과는 대조되는 검은빛을 내뿜는 기이한 사내였다. 언제나 표정 없는 그의 얼굴에는 알 수 없는 깊은 슬픔과 고통이 그 자신도 모르게 스쳐 지나갔다.'눈앞의 상황에 헛웃음만 나왔다.'“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아버지라는 인간이…….”'눈물이 눈에 맺히긴 했으나 한 방울의 눈물도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이 굳은 표정으로 눈물 하나 떨어뜨리지 않고 있었다. 보통 사람들과는 다르게 하얗게 질린 시체의 가슴에는 총구멍이 나 있었다. 그리고 그 구멍으로는 철철 넘친 핏자국들이 이리저리 널려 있었다.'“우리가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야. 그저 조용하고 평범하게만 살고 싶었을 뿐인데”'남들보다 평범하지 않은 가정이라고 해도 그동안 큰 어려움 없이 엄마와 단둘이 오순도순 나름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그녀의 밝은 성격 때문에 누구도 그녀에게 뭐라고 하는 사람들도, 욕을 하는 사람들도 없었다. 그런데 평생 한번 겪어 보지 못할 일이 지금 벌어졌다.'그녀는 이를 앙다물었다. 이제 겨우 스무 살인 그녀는 명문 대학의 학생이었다. 그 학생 시간을 지냈는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좀 더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직장을 얻어 엄마를 호강시켜 줄 생각이었는데 이제는 아무것도 없다. 눈의 초점이 사라진다. 그녀는 천천히 꿇고 있던 무릎을 펴고 일어섰다. '“절대로 용서 못해. 당신에게도 피눈물을 흘리게 해 주겠어.”'시퍼런 칼날이 눈 안에서 번뜩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