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어둠을 뚫고 빛 속으로 ''''정린을 태운 택시가 구룡반도로 접어들자, 홍콩의 좁은 도로는 여느 때처럼 차들로 북적대기 시작했다. 그녀는 병원을 나올 때 레너드에게서 얼마정도의 돈을 빌리긴 했었지만 바로 [레드 드래곤]으로 들어갈 것이란 생각으로 많은 돈은 빌리지 않았었다. 몽콕 입구로 들어섬과 동시에 가진 돈과 택시비가 거의 맞아떨어지자 정린은 급한 마음에 차에서 내려 번잡한 몽콕 시내를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공중 전화 부스를 발견하고 안으로 들어간 정린은 미영의 집 전화 번호를 누르고 친구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터져나올지도 모르는 울음을 참느라 아랫입술을 지긋이 깨물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미영은 아무리 기다려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제 유산 후유증에서 털고 일어날 정도가 되어서인지 외출을 한 모양이었다. 정린은 답답한 가슴을 어쩌지 못하고 한숨만 내쉬며 대답 없는 수화기를 든 채 하염없이 전화기를 원망스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다시 재 발신, 재 발신, 여전히 대답 없는 친구.'정린은 낯선 땅 홍콩의 터질 듯 북적거리는 거리를, 좁아 터진 전화부스 안에서 둘러보며 자신이 지금 얼마나 심각하게 혼자인지를 깨닫고 두려움으로 숨을 멈추었다.'아무도 없었다. '자신이 믿고 의지했던 미영은 가장 절박하고 다급한 순간, 집을 비운 상태였고 그녀가 너무나 빨리 사랑해버렸던, 지금 자신의 몸 안에 있는 너무나 작은 생명의 아버지인 마이클은 정린의 짧은 부재기간 동안 다른 여자를 끌어들여 외로움을 달랬다. '그녀는 미칠 듯한 고립감으로 소리를 지르려고 입을 벌렸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손으로 입을 막고 솟구쳐 올라오는 구역질을 참으려고 몸을 굽혔다. 아직 형태조차 완전히 잡히지 않은 작은 생명이 어미의 두려움을 느끼고 시위 중이었다. 정린은 아직 생명이 자라고 있다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납작하기만 한 자신의 배에 손을 가져다 대고 조용히 속삭였다.'“미안해. 미안해. 아가. 엄마가 너무 겁쟁이라 너에게 미안해.”'누구에게서도 배워 본 적도 없는 낯설기만 한 감정, 그녀는 자신의 안에서 숨쉬고 있는 새 생명에 대한 애틋한 보호 본능으로 작게 한 숨을 내쉬며 다시금 밀려드는 현기증과 토악질을 물리치기 위해 차가운 유리에 이마를 갖다댔다. 정린은 한참 동안을 눈을 감고 유리에 이마를 기댄 채 부스 안에 서 있었다. 얼마가 지났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다시 미영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여전히 그녀는 부재중인 모양이었다.'정린은 한 숨을 내 쉰 후 부스 밖으로 나오기 위해 유리문을 살며시 밀었다. 길가로 나오자 세상이 돌아가는 소리와 냄새가 느껴져 그녀는 잠시 숨을 크게 들이쉬고 절망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 용기를 그러모았다. 어디선가 달콤한 초콜릿 향이 풍겨왔다. 정린은 잠시동안 감았던 눈을 뜨고 코끝을 자극하는 향이 풍겨오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녀는 조금 전 비어져 나오려던 눈물이 가득 맺힌 눈을 들어 앞쪽을 응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