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삼재(三災)래.”'주은의 손가락 사이에 끼어 있던 팩스가 펄럭였다.'“삼재라니까.”'“근데?”'“근데라니? 삼재가 뭔지 몰라? 진짜 큰일 날 애로구나.”'안타까운 듯 혀까지 쯧쯧 차는데 뒷골이 띵했다. 나이 서른하나에 그런 것도 모른다는 건 말이 안 되는데다 정말 모르는 셈친다 해도 그렇지, 고작 그런 걸로 큰일 날 건 또 뭐야?'“그래서 뭘 어쩌라고.”'주은은 짜증이 희미하게 비치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삼재인 거 잘 알았으니까 그 얘긴 적당히 좀 했으면 좋겠어, 라는 의도를 확연하게 깔고서 시선을 들어올렸다. 연락도 없이 갑자기 사무실까지 찾아와 책상 옆에 붙어선 채 앵무새처럼 삼재만 줄곧 외치는 작은언니를 얼른 쫓아내지 않으면 남아 있는 오후 업무 스케줄 전부가 공중에 붕 뜨게 생겼다.'“어쩌긴! 대비를 해야지! 너, 올해 삼재에 들어서 지금이라도 단단히 대비하지 않으면 앞으로 3년 내내 액운이 떨어지지 않을 거라는데 걱정도 안 돼?”'“그런 미신 따위에 대비는 무슨…….”'“어머, 얘 좀 봐. 어쩜 이렇게 태평하다니? 나는 심장이 벌렁벌렁하는데 어떻게 된 애가 이렇게 태연해!”'“언니, 그런 얘기에 심각하게 반응하는 게 더 웃긴 거야.”'“은이 너!”'2남 3녀 중 키가 제일 작고 체격도 야리야리한 작은언니의 양 눈이 쫙 찢어졌다. 고집을 부리기 시작했다는 신호였다.'주은은 골치 아프다는 듯 인상을 찡그렸다. 일에 치어 잡생각에 빠질 시간이 없다는 것, 정신을 차려보면 며칠씩 훌쩍 흘러가 있다는 것, 고단한 현실을 잊어버리게 된다는 것까지는 정말 감사할 일이다. 하지만 업무 외의 시달림까지 커버하기에는 그녀의 몸도 정신도 많이 지쳐 있었다. 어지간하면 그만 돌아가 줬으면 좋겠건만 언니는 도통 물러설 기세가 아니었다. 주은은 따끔거린 지 한참이나 된 명치의 왼쪽부분을 슬그머니 누르며 결국은 체념했다.'주은은 팩스를 책상 한구석으로 밀어놓고 전화기를 끌어당겼다.'“여보세요? 정 이사님? 안녕하세요, 김주은입니다.”'- 어, 주은 씨. 그렇지 않아도 연락해보나 어쩌나 하고 있었는데 마침 전화 잘했네. 팩스는 받았어?'“그럼요, 잘 받았어요. 안 그래도 그 일로 전화 드린 거예요. 양해를 좀 구해야 할 일도 있고 해서요.”'- 양해? 무슨?'“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 그런데, 자세한 얘기는 내일 오전에 나누었으면 하고요. 제가 내일 10시쯤에 다시 전화 드릴게요. 괜찮으실까요?”'슬쩍 얼버무리며 흘겨보는 주은의 시선이 자못 매서웠다. 찔리는 구석이 하나도 없다고는 못할 언니가 괜한 헛기침을 두어 번 뱉었다. 미안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하고 수화기를 내려놓은 주은이 언니를 향해 똑바로 돌아앉았다.'“삼재가 어쩌고저쩌고, 대체 누가 그런 소릴 해?”'“큰올케가.”'냉큼 되돌아오는 대답이 주은의 이마에 얕은 골을 팠다. 나이답지 않게 후덕한 성품인 큰올케의 등장이 다소 당황스러웠다.'“지난 초하룻날 절에 불공드리러 갔다가 주지스님께 여쭤봤다나 봐. 올케가 혹시나 싶어서 네 생년일시를 말했더니 대뜸 그러시더래.”'“아니, 남의 생년월일을 왜!”'“그야 아무려면 어때. 중요한 건 네가 삼재라는 거지.”'정작 삼재의 당사자는 별로 중요하다고 생각진 않는데 말이다.'“사실 올 들어 네 운수가 영 바닥이었잖니. 병원에서…….”'유창하게 쏟아지던 말이 딱 끊어짐과 동시에 주은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언니는 저도 모르게 헉하고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수다스럽게 떠들어댄 자신의 입을 꿰매고 싶은 심정이리라.'허둥대는 언니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어내며 주은은 속으로 열까지 천천히 세었다.'아직은 좀 아프다. 열심히 치료해서 새살이 오른 상처가 도로 벌어진 느낌이었다. 이내 픽하고 쓰게 웃었다. 실상은 억지로 묻어두었을 뿐 완전히 치유된 것도 아닌데 새살이니 뭐니 하는 식으로 자기 위로를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조금 따끔거리나 싶었던 명치에 식은땀이 질끈 배어날 정도로 통증이 일었다. 주은은 아랫니를 지그시 깨물었다. 신경성 위염이 또 말썽을 부리기 시작했다.'“저기, 으, 은아. 그러니까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라…….”'약을 어디 뒀더라. 그러고 보니 정신없이 바빠서 어제 점심부터 계속 안 먹었는데 그래서 더 아픈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