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내 사랑 모모

1. 추억과의 조우''''“예? 뭐라구요?”'대한민국 서울 대치동의 한 고급빌라 2층이 한 남자의 격앙된 목소리로 낮게 움찔거렸다. 저녁 식사를 마친 8시 즈음, 오랜만에 집에 들른 시건은 적당한 포만감에 기분 좋게 과일 한쪽을 집어 먹다가 그만 사래에 걸릴 뻔한 위기를 간신히 넘기며 소파에 앉아 있는 부모를 어이없는 표정으로 쳐다봤다.'“기억 나, 안 나?”'조용하고 차분한 어조로 자신을 채근하는 아버지 최근석 씨의 손에는 십 년 전의 초등학교 시절의 사진이 들려 있었다. 아버지, 엄마, 시건 그리고 똘망똘망 야무지게 생긴 계집아이와 까무잡잡한 농사꾼 아저씨와 60이 훌쩍 넘은 할머니가 초라한 기와집 마당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시건에게는 어린 시절의 즐거운 한 때가 고스란히 담긴 그런 사진이었지만 지금 이 순간은 추억이고 나발이고 어이가 없어 기절 일보 직전의 애물단지로 전락해 버렸다.'“아, 아버지. 이건 정말 웃기는 말씀이세요. 철없을 때 한 말 그대로 지키고 살자면 전 대통령도 돼야 하고 태권 브이 조종사에 피아니스트, 야구 선수 그런 거 몽땅 다 돼야한다구요. 그리고 저 이제 스물 셋이예요. 결혼을 강요받을 만큼 늙은 것도 아니고 또 연예인들 늦게 결혼하는 건 다반사구요. 이런 거 저런 거 떠나서도 지금은 3집 활동 하느라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판에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말씀을 하세요?”'손에 들고 있던 포크를 접시에 탁 내려놓고는 눈에 쌍심지 켜고 다다다 읊어대는 언변이 평소의 그답지 않게 장황했다. 그만큼 아버지, 엄마의 말이 어이없고 황당하며 기가 찬 그런 것이었다.'결혼? 마이 갓! 결혼이라니. 그것도 철딱서니 없을 때 한 말 따위를 이제 와 지켜내라고 하다니 정말 황당하다 못해 돌아가시겠네. 안 그래도 3집 마무리 활동 하느라 스트레스에 수면부족, 피로누적으로 딱 죽겠구만 아들래미 격려는 못할망정 거기다 더 보태시나?'“제가 알기로 이제껏 학비 대주신 것만 해도······.”'“최시건. 스톱.”'그의 말을 막고 나선 것은 엄마 박희정 여사였다. 시건의 상식으로는 아버지가 저런 말씀을 하시면 양팔 걷어붙이고 말려야 할 사람이 바로 자기 엄마였다. 헌데 그런 그의 예상을 철저히 뒤엎으며 오히려 음울한 음성과 무겁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아들을 쳐다보는 희정의 태도가 심상치가 않았다. 시건은 등줄기로 서늘한 손 하나가 쑥 훑고 지나가는 듯한 불길함을 느꼈다.'“딴따라 그만 둬라.”'“엄마!”'“시끄럽다!”'아들이 발끈하자 희정은 단숨에 아들을 제압해 버렸다.'“생명의 은인에 대한 보은도 모르는 자식 따위 필요 없으니 당장 호적 파서 나가버려! 네가 이렇게 대가리에 똥만 찰까봐 그렇게 광대 짓거리 반대했건만 결국은 내 기우가 맞아떨어졌구나. 제 입으로 한 약속도 헌신짝 팽개치듯 내 팽개치고 인간의 도리와 기본, 은혜도 모르는 천인공노할 놈으로 전락하다니. 정 그렇게 결혼이 하기 싫으면 머리 깎고 절로 들어 가. 아들 하나 부처님께 공양한다고 생각할 테니.”'“엄마!”'눈 하나 깜짝 않고 하나 밖에 없는 아들에게 그런 무지막지한 말을 서슴없이 하는 희정의 모습은 여걸의 기상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이를 놓고 봐도 이 집안의 주도권이 행정자치부 차관인 최근석 씨보다 플로리스트 박희정 여사에게 있음이 확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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