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 골목길을 이리저리 걷다보면 발견하게 되는 아담한 전통 찻집 마하연의 문을 열고 대학생으로 보이는 남학생이 한 명 들어왔다. 카운터에서 책을 읽고 있던 하연은 일어나 씩씩하게 그를 맞았다.'“어서 오세요.”'그는 테이블 쪽으로 가지 않고 하연이 서 있는 카운터 쪽으로 다가왔다. 카운터 바로 앞쪽에서 걸음을 멈춘 그가 하연을 향해 손에 들고 있던 것을 내밀었다.'그것은 하얀 바탕에 검은 땡땡이가 선명하게 박힌 우산이었다. 창밖으로 눈부신 오후의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비라고는 한 방울도 내리지 않고 있는데 느닷없이 그가 내미는 우산을 바라보며 하연은 당혹스러웠다.'왜 이 우산을 내게 주는 걸까?'그의 얼굴을 바라보는 하연의 뇌리로 이런 생각들이 스치고 지나갔다. 이상한 사람 같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로 아주 잘 생긴 학생이었다. 반듯한 이목구비에 깔끔하게 자른 머리카락이 이마를 반쯤 덮고 있었고 눈매는 좀 날카로웠지만 전체적으로 따뜻하고 밝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왠지 낯이 익었고 하연은 그를 어디서 봤는지 기억해내려고 애썼지만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가 빤히 자신을 쳐다보며 우산을 받으라고 재촉하자 하연은 왠지 얼굴이 붉어지면서 가슴이 두근거리기까지 했다.'“받으세요.”'저음의 목소리가 참 듣기 좋았다. 얼떨결에 하연은 그가 내미는 우산을 받아들었다.'“너무 늦게 가져다드려 죄송합니다.”'하연은 그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있었다.'“기억나지 않아요. 한 달 전에 이 우산을 제게 빌려 주셨잖아요.”'싱긋 웃으며 말하는 그를 바라보다 우산으로 눈길을 돌린 하연은 그제야 이 우산이 자신의 것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하얀 바탕에 땡땡이가 박힌 이 우산은 분명 하연의 것이었다. 그러자 한 달 전 비가 많이 오던 그날이 떠올랐다. 그날 엄마에게 우산을 갖다 주러 찻집에 들렀을 때 마지막 남은 손님이 우산도 없이 나가는 것을 보고 하연은 자신의 우산을 주었다. 그 때 그 손님과 자신의 앞에 서 있는 그의 얼굴이 겹쳐졌다.'“그럼, 그 때 그 손님?”'“네, 기억 나셨죠.”'“네.”'하연은 고개를 끄덕였다.'“우산, 너무 늦게 갔다 줬죠.”'“아니에요.”'하연으로선 그때 구태여 받으려고 우산을 준 것이 아니었다. 가져다 줘도 좋지만 안 가져다줘도 괜찮다는 생각으로 빌려준 것이었다. 그러고 나서 하연은 우산을 빌려준 것을 잊어버렸다.'“이건 너무 미안해서이기도 하고 우산을 빌려준 보답이기도 하니까 받으세요.”'그는 주머니에서 티켓 한 장을 꺼내 우산을 내밀었을 때처럼 하연의 앞에 내밀었고 하연은 엉겁결에 그가 내미는 티켓을 받았다. '“꼭 와 주세요.”'그러곤 그는 하연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문을 열고 나갔다. 하연은 꿈을 꾼 듯 멍하니 서 있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는 그가 주고 간 티켓을 보았다. 그것은 사진 전시회 티켓이었다. 장소는 동랑 대학교고 내일이면 끝나는 것이었다. '꼭 와 주세요. '그의 남긴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그의 반듯한 이목구비와 담백한 인상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