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화 심우(心雨)''''오슬오슬 옅은 추위를 느끼며 아리는 눈을 떴다. 류의 팔을 베개 삼아 그의 품 안에 꼭 안겨 있는 것이 행복하고 행복했다. 자세가 불편하여 류가 깨지 않도록 조심하며 몸을 움직이자 양 다리 사이가 쓰리고 아팠다. 간밤에 있었던 류와의 사랑 놀음을 떠올린 아리는 부끄러움과 함께 은근한 미소를 피어 올렸다.'류는 평소의 점잖은 모습을 벗어던지고 한 마리의 야수가 되어 아리를 탐하고 탐했다. 격렬하게 제 안으로 파고드는 류를 아리는 있는 힘껏 받아들였다. 알알한 아픔과 함께 제 안으로 들어온 류는 그 어떤 격랑보다도 더 격하게 밀려왔다가 밀려나며 그녀를 환희로 파도치게 하였다.'‘류, 고운 꿈꾸세요. 이 세상 그 어떤 때보다 달디 단 꿈을 꾸세요. 이 밤이 영원히 각인되도록. 그리하여 이 밤이 영원히 잊혀지지 않도록.’'아리는 류의 눈꺼풀에 가볍게 입맞춤을 하며 기원했다. 그리고 까만 밤이 점점 밝아지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까무룩 잠이 들었다.'아리가 다시 잠에서 깨었을 때 새벽빛이 동굴 안을 어슴푸레하게 밝히고 있었다. 류의 편안한 숨결이 귓가에서 머무르고 그의 단단한 팔이 가슴께를 짓누르며 연분홍 유두를 자극했다. '아리는 얼굴을 붉히고 일어나 앉아 류를 내려다보았다. 새벽빛에 음영이 진 류의 얼굴은 단잠에 빠진 천진난만한 아이 같았다. 간밤에 자신과 폭풍 같이 얼렀던 격정적인 사내의 얼굴은 밤과 함께 사라진 듯했다.'쌔근, 작은 숨소리와 함께 오르내리는 쇄골을 내려다보며 아리는 자신 역시 한숨을 내쉬었다. 다시는 고운님의 얼굴을 볼 수 없으리라는 안타까움이 아리로 하여금 한숨을 짓게 하였다. '‘되었다. 이것으로 되었다.’'아리는 다짐하듯 고개를 끄덕였다.'더는 욕심을 부리면 아니 되었다. 그와 소중한 추억을 가졌으니 그것으로 된 것이었다.'아리는 류의 모습을 머릿속에 새기듯이 섬세하게 훑었다. 그리고 일어나 앉아 옷깃을 여몄다. 고운 비단 옷은 간밤의 욕망에 여기저기 주름이 지고 흙먼지가 묻어 말이 아니었다. 아리는 손길로 쓸어내려 옷깃을 펴고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빗질하였다. 그녀의 손길에 곧 매무새는 단정하게 정리되었다.'조용히 한다고 하였으나 부산스러움은 어찌할 수 없었는지 깊게 잠들어 있던 류가 눈을 떴다. 류는 잠이 덜 깬 눈으로 아리를 향해 환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 미소는 참으로 고왔다. 소중한 이를 향해 미소 짓는 것처럼 애정이 담뿍 담겨 있었다.'아리는 감히 류의 미소를 마주할 수 없어 시선을 피했다. 그리고 일부러 얼굴을 딱딱하게 굳히고 입을 열었다.'“옛날, 순우분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류는 그런 아리를 보고 입가에 띄웠던 미소를 지웠다. 감정 없는 얼굴로, 아니, 싸늘한 서기마저 내비치며 아리가 입을 열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사는 집 남쪽에는 커다란 느티나무가 한 그루 있었는데 어느 날 순우분이 술에 취해 그 나무 밑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보랏빛 옷을 입은 두 사나이가 나타나서 순우분에게 ‘임금님의 명령으로 당신을 모시러 왔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순우분이 두 사내를 따라 느티나무 구멍 속으로 들어가자 큰 대궐이 있고 아름다운 산과 들이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 순우분은 그 나라에서 아름다운 공주를 아내로 삼아 재상이 되어 부귀영화를 누렸습니다. …… 그런데 갑자기 누가 어깨를 흔들어 깨어보니 자신은 느티나무 아래에서 쪼그리고 잠이 들어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공주도, 많고 많던 재산과 하인들도…… 모두 허망한 꿈에 불과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