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둥실둥실. '고무튜브 위에 늘어져서 살포시 두 눈을 감고 있는 그녀는 최라라. 튜브에 연결된 커다란 파라솔 덕택에 뜨거운 햇볕에 피부를 그을릴 걱정도 없이 그녀는 살랑대는 바람과 몸을 받쳐주고 있는 물의 부력을 마음껏 즐기고 있었다. '“우아아암. 여기가 천국이로구나!”'조용한 주택가 개인 수영장의 분위기는 여유롭고 느긋했다. 한가로이 발끝으로 물방울을 찰싹찰싹 튀기며 물놀이에 정신이 팔려 있는 사이 이 집을 나누어 쓰고 있는 그녀의 룸메이트들 중 하나인 레이니가 다가와 그녀를 불렀다.'“라라!”'“우아악!”'갑작스런 부름에 놀란 라라가 허둥대는 바람에 튜브는 뒤집어졌고, 라라는 그대로 수영장 물 아래로 잠겨버렸다. 그래도 그녀는 금세 용솟음치듯이 도로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미소를 짓고 있던 레이니를 올려다보았다.'“괜찮니? 물 먹진 않았어?”'“켁켁! 갑자기 불러서 놀랐어…….”'“아, 미안. 전화 받을 수 있겠어?”'레이니가 내민 것은 무선전화기였다. 라라는 목 바로 아래까지 차는 물을 겨우겨우 헤쳐 가며 무거운 발걸음으로 전화기를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그녀가 수화기를 받아들어 귀에 갖다대곤 ‘여보세요’라고 한 마디 하자마자,'“너 도대체 뭐하는 녀석이야!” '이런 고함소리가 기계 밖으로 터져 나왔다. 라라는 반사적으로 귓가에서 수화기를 멀찍이 떨어뜨린 후 앞에 서 있는 룸메이트를 원망스럽게 쳐다보았다. 그리고 한숨을 쉬며 다시 수화기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라라의 얼굴은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져 있었다.'‘젠장, 드디어 잡혔네. 최라라 인생의 황금기는 이제 끝이냐고오오오!’'눈 따가운 햇살이 내리쬐는 L.A.의 여름이 이제 거의 끝을 향하고 있는 즈음, 라라는 자신의 인생에서 다시는 오지 않을 꿈같은 휴가가 끝나고 말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로스쿨 졸업 후 제대로 한 번 놀아보려고 계획했던 휴가는 이제 막을 내려야 하는 것이다. 벌써 1년이 넘게 이 꿈처럼 달콤한 휴가를 즐기고 있었다면 그 계획이라는 것이 충분히 달성되고도 남은 것이라 하겠지만, 라라 본인에게는 그 시간도 부족하고, 또 부족했다. 한참동안 아버지께서 자신의 귓속으로 불호령을 떨어뜨리고 계시는 동안 그녀는 조용히 ‘네, 네’ 대답만 하고 있었다. 당연히 속으로는 한탄을 터뜨리며 울부짖고 있었지만.'‘이제야 겨우 이 L.A.가 내 손안에 들어왔건만! 하늘도 무심하시지…….’'한국의 대학 학사졸업 후 곧바로 예일 로스쿨의 입학 허가를 얻어내고, 치열한 그 3년 과정을 탈락이나 포기 없이 순조롭게 이수하고서 라라는 조용히 자신의 오랜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즉 건강이 악화되어 요양을 해야 한다는 핑계를 대고 취업하지 않고 그대로 이 따스한 L.A.에서의 은거생활을 시작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바쁘신 아버지께서는 학위수여식에도 나타나지 않으셨기 때문에 그녀의 거짓말이 더 확실히 먹혀들어갈 수 있었다. 그녀의 건강상태를 직접 확인하실 여유가 없으셨던 아버지는 로스쿨 과정이 힘들다는 객관적인 사실을 받아들여 라라의 말을 믿어주셨고, 그녀는 물 만난 고기처럼 몇 년간 꿈꿔왔던 생활에 젖어들어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이런 내막을 모두 알고 있는 다른 사람은 그녀의 막내 동생 한 사람뿐이라 그 녀석만 입을 다문다면 들킬 일이 없어 안심하고 L.A.를 휘젓고 다녔다. 허나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그녀가 아프기는커녕 기운이 넘쳐나서 아주 날아다니고 있다는 사실이 발각되고 말았으니 아버지께서 어떻게 나오실지 두려워졌다. 그리고 실제로도 라라는 아버지께서 주문하시는 내용에 숨이 턱 막혀와 그대로 수영장 밑바닥으로 가라앉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