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배가 고팠다. 배가 고파서 죽어버릴 것만 같았다. 가출을 한 지 5일째, 가지고 있던 돈은 불량배들에게 빼앗겨 버리고, 휴대폰도 없다. 봄이라고는 하지만 새벽녘 공기조차 만만치 않았다.'‘집으로 돌아갈까? 형에게 연락을 해볼까?’'잠시 망설이던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얼음장보다 더 차가운 집, 그보다 더 차가운 부모님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없다. 아직은 견딜 수 있다. 견뎌야 한다. 스스로 독립할 수 있을 정도로 성공을 한 뒤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의욕을 다지던 그는 뱃속에서 나는 꼬르륵 소리에 어깨를 떨어뜨렸다. 지금 당장은 무엇보다 배를 채우는 것이 급선무다.'“제기랄. 밥이나 배불리 먹었으면 소원이 없겠네.”'그는 구수한 냄새에 끌려 시장통의 허름한 순댓국집 앞까지 걸어왔다. 잡채와 야채로 속이 터질듯이 찬 순대꾸러미를 보니 뱃속에서 요동을 치기 시작한다.'‘어떻게 하면 순대국밥을 얻어먹을 수 있을까?’'그는 깊이 눌러쓴 비니를 정리하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따뜻한 국밥 한 그릇이면 온 천하를 얻은 것처럼 행복해질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 그의 주머니에는 동전 한 푼도 없다. 하늘에서 천사라도 뚝 떨어진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그가 순댓국을 먹을 수 있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국밥 먹을래?”'등 뒤에서 낮고 허스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환청일까? 갸우뚱거리며 고개를 돌리자 자신의 뒤에 서 있는 하얀 형상이 보였다. 천사인가? 커다란 눈동자가 촉촉하게 젖어 있는 예쁜 천사.'‘다시 하늘로 날아가 버리는 것은 아닐까?’'걱정이 된 그는 그녀의 겨드랑이를 바라보았다. 다행히 날개는 보이지 않는다.'“배고프면 내가 국밥 사줄게. 들어갈래?”'천사가 눈부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는 최면에 걸린 사람처럼 고개를 끄덕였다.'“가자.”'천사를 따라 들어간 식당은 큰 드럼통을 엎어 놓은 허술한 테이블과 등받이가 없는 플라스틱 의자가 전부인 곳이었다. 평소의 그라면 쳐다보지도 않을 곳이었지만 5일 동안이나 굶다보니 식당의 환경 따위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다.'“어휴. 이게 무슨 냄새야. 아가씨, 거지를 데리고 들어오면 어떻게 해.”'옆에 앉은 남자 두 명이 코를 막으며 이맛살을 찌푸렸다. 어제 저녁, 중국집 앞에서 구정물을 뒤집어쓴 것이 그대로 몸에 배인 모양인지 시큼털털하고 고약한 냄새가 나는 것도 같았다.'“젊은 사람이 좀 씻고 다니지.”'그들은 비위가 상했는지 연신 투덜거리며 그를 노려보았다. 기세를 보니 당장에라도 나가라고 소리칠 것 같다.'그는 겁이 났다. 자신을 노려보는 그들이 무서워서 그런 것이 아니라, 앞에 앉은 천사의 마음이 변해 이곳을 나가자고 할까 봐 두려웠다. 그는 순댓국이 죽을 만큼 먹고 싶었다.'“이상한 사람들이네. 이 아이 냄새가 어때서요?”'다행히도 그의 예상이 빗나갔다. ‘천사도 화를 낼 줄 아는구나.’라고 생각하던 차에 가냘픈 천사가 용감하게도 그들을 노려보았다.'“쓰레기 같은 냄새가 나는구만.”'남자들이 다시 이죽거렸다.'“어머나. 쓰레기라뇨? 말조심하세요. 제 동생은 부모님 병원비를 벌기 위해 밤새도록 생선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거라고요.”'생선가게? 아르바이트?'그와는 상관이 없는 단어들이지만 천사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거짓말을 술술 하기 시작했다.'“아이구. 요즘 젊은 사람 같지 않게 훌륭한 학생이네. 아가씨도 너무 화내지 말고 어여 앉아요. 그렇지 않아도 멀쩡하게 생긴 젊은이가 왜 이러고 다니나 이상하게 생각하긴 했어. 우리 손자 녀석도 지 부모 고생한다고 방학 내내 공사장에서 등록금을 벌더라고. 손자 녀석 생각이 나서 마음이 짠하네. 내 특별히 건더기 많이 넣어서 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