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다시 보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차를 돌려 도망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하지만 공간이 없었다.'지원은 숨을 고른 뒤 열쇠를 돌려 아직 떨리고 있는 엔진을 멈추게 했다. 희미한 진동의 여운으로 공기가 떨리는 것을 느끼며 천천히, 아주 천천히 문을 열고 차 밖으로 나왔다.'그가 있었다.'은현건은 고전적으로 잘생긴 남자는 아니었다. 보기 드문 장신(長身)인 그는 지나가는 모든 이들의 시선을 끌 만큼 키가 컸으며 어깨는 지나치게 넓었다. 긴 팔과 다리는 늘씬하다기보다 두텁고 강했으며 얼굴선은 매끈하지 않고 거칠었다. '하지만 매력적이었다.'자정을 넘긴 시간이었고, 밤하늘은 까만 어둠으로 가득해서 지금 지원은 그를 자세하게 볼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3년 전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매끄럽지 않은 이목구비에도 현건의 하얀 얼굴은 항상 단정했다. 투명한 은테 안경 너머로 엿보이는 눈빛은 차분하고 깊었으며 다정하게 미소 짓는 입술은 언제나 따스한 빛을 발했다. '때때로 은현건의 커다란 몸집과 거친 윤곽선은 그를 잘 모르는 낯선 이들에게 위화감을 안겨주곤 했다. 그러나 은현건의 열정적인 영혼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의 매끄럽지 않은 외모가 뜨거운 심장만큼이나 유혹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지원은 그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문제였다.'“무슨…….”'평소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지원은 손이 닿지 않을 비교적 먼 거리에 멈춘 뒤 목을 가다듬고 다시 질문했다. '“무슨 일이죠?”'“오랜만입니다.”'대문 옆의 벽에 등을 기대고 서 있던 현건이 몸을 일으켰다. 한 자세로 오래 서 있은 탓인지 항상 우아하고 날렵하게 움직이던 몸이 약간 불편해 보였다. '지원은 다시 물었다.'“무슨 일이죠?”'“인사, 안 합니까?”'목소리 또한 3년 전과 같았다. 빛보다도 빠른 속도로 강렬하게 그녀의 뇌리 속으로 파고드는 그 깊은 목소리. 지원은 소름이 돋았다.'“인사나 듣자고 찾아온 건 아닐 텐데요?”'“그렇지요.”'현건은 오른손 집게손가락으로 내려간 안경 중앙 부분을 지그시 눌러 올렸다. 고개가 살짝 움직였고, 동시에 구름 속에 숨어 있다 탈출한 달빛이 그 틈을 타 현건의 옆얼굴에 흩뿌려졌다. 차가운 금가루가 내려앉은 그의 광대뼈는 지나치리만큼 도드라져 보였고 전체적인 안색 또한 회색으로 창백했다.'3년 전에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에도 현건은 초췌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지금 눈앞에 보이는 만큼은 아니었다.'“할 말이 있습니다. 들어가서 이야기하지요.”'“싫어요.”'그의 변한 외모에 충격을 받았지만, 지원은 단칼에 잘랐다.'“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듣고 싶지 않군요. 이만 돌아가세요. 그리고 다시는 나타나지 마세요.”'“전 약혼자가 그렇게 꼴 보기 싫습니까?”'조용한 목소리였지만 차가운 빈정거림으로 가득했다. 지원은 답하지 않았다. 현건은 눈을 감으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고, 지원은 바로 알아보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할 때의 그 버릇을.'“할아버님께서 돌아가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