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안 좋은 일은 언제나 한꺼번에 터진다. 그리고 터지지 말았으면 하고 우려하는 일은 꼭 터지고야 만다. 머피의 법칙대로.'오늘은 수린의 생일이었다. 하지만 생일날 아르바이트 자리에서 잘린 사람은 이 세상천지에 자신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아르바이트를 잘린 것은 전적으로 수린의 잘못이었다. 연습에만 임하면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정체되어있다고 생각하는 수린의 뇌 구조 때문이었다. 오늘로서 한 달 새 통틀어 스무 번을 지각했으니 자신이 편의점 주인이라고 해도 자를 판국이었다.'거기다 지금 수린은 터질 듯 말 듯 감도는 생리통 초기증상에 이를 악물면서 집을 나서고 있는 중이었다. 뭐 좋게 표현하자면 집을 나선 것이고 나쁘게 표현하자면 또 아버지에게 몰매를 맞고 쫓겨난 것이지만. '“나가! 당장 나가지 못 하겠어? 내가 어떻게 네 아비냐. 나는 너처럼 말 안 듣고 제 고집대로 하는 딸자식 둔 적 없다!”'이렇게 뒤통수 몇 대 맞고 욕먹은 뒤 쫓겨나는 일 하루 이틀 있던 일도 아니고 예상하고 왔기에 거의 도망치다시피 쫓겨 나오면서도 수린은 피식 웃어버렸다. ‘누굴 닮아가지고 저 고집인지.’하는 아버지의 말씀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사실 수린은 아버지의 판박이 붕어빵이라고 20년을 넘게 살아온 이 동네에서 소문이 자자했다. 하다못해 어쩌다가 이산가족이 되어 길 가다가 부딪혀도 알아볼 정도로 판박이에다 그 성향까지 그대로 피로 물려받아 부전녀전하면 누구나 다 이들을 떠올릴 정도였다.'아직도 아버지에게 맞은 뒤통수가 아려오고 있었다. 영감이 본능적으로 예감이 뛰어나 어떻게 자신이 몰래 집에 들어간 줄 알아채고 그리도 일찍 퇴근하셨는지. 하늘만 아실 것이다. 물론 그 하늘은 징그러운 남동생 녀석이 아버지에게 살짝 소스를 흘렸다는 것도 아실 것이다. 천하에 둘도 없는 비열한 놈.'오랜만에 그것도 자신의 생일날 미역국을 끓여 놓고 아버지 몰래 어머니가 불렀을 때, 모처럼 어머니의 손맛으로 포식하나 하며 부푼 꿈을 안고 집안에 들어섰건만 식탁에 앉기도 전에 영감이 들이닥쳐서는 산통을 다 깨고 만 것이다. '이점으로 볼 때 수린은 남동생 수호가 아무리 평소 비열한 놈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는 해도 정말이지 치졸하기 짝이 없는 놈임을 새삼 다시 한 번 느끼며 이를 갈았다. '아무리 천적이라도 그렇지 제 누나 생일날까지 이럴 것이 뭐람. 하긴 녀석이 오늘 수린의 생일이었음을 알리 만무했다. 집에서 그놈과 티격태격 할 때조차 한 번도 자기 누나의 생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놈이었으니 말 한들 입만 아플 뿐이었다.'어머니는 지금쯤 수호의 등짝을 후려갈기며 눈을 흘기고 계실 것이다. 물론 오늘이 수린의 생일이라는 사실을 아버지 앞에서는 말하지 못하시고 그저 눈만 흘기고 계실 것이다. 2년 전 호적에서 파 버리시겠다고 하며 맨몸으로 쫓아내실 때 집에서 수린의 ‘수’자만 입에 올려도 일명 ‘밧따’를 치시겠다고 함구령이 내려졌으니.'생리 전후로 오는 통증인지 배가 고파 아픈 것인지 내내 묵직한 통증이 가슴아래에서 아랫배까지 흐르고 있었다. 이런 날은 연습을 해도 제대로 되지 않을 것 같으니 그저 남자친구나 만나는 것이 상책인 것이다. 하긴 이놈도 한심하기는 마찬가지다. 제 여자 친구 생일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놈을 남자친구라고.'수린은 바지 뒤춤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어 경빈에게 어떤 제재를 가할까 생각하며 폴더를 열었다.'‘따르릉.’'수린이 폴더를 열자마자 핸드폰이 울어대고 액정화면에는 ‘나의 비니’라는 글자가 나타났다. 하긴 남자친구가 자신의 생일을 천하없어도 잊었을 리 만무하다. 수린은 피식 웃으며 핸드폰을 귀에다 대었다. 물론 조금 늦게 전화한 벌칙으로 목소리를 까는 것 잊지 않았다.'“여보세요.”'‘수린아. 어디야?’'경빈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수린의 귀를 간질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