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적과의 만찬

“여깁니다, 형님.”'송근우의 말에 대한은 뒷짐을 진 채 눈앞에 있는 한옥 집을 올려다보았다. 일제 강점기 때부터 삼 대째 이어져 내려오는 전통 한식집 ‘백궁’. 옛날 고관대작이나 살았음직한 한옥 집은 커다란 대문을 중심으로 양옆으로 긴 담이 이어져 있었다. 왼편으로 돌아가면 식당으로 바로 통하는 문이 있었고, 오른편은 뒷동산 쪽으로 올라가는 길이었다. 그는 아직도 서울 시내에 이런 집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에 사뭇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신기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위치 조건이 마음에 들었다.'“괜찮네. 네가 보기엔 어떠냐?”'“제가 보기에도 이보다 적합한 땅은 없을 것 같습니다, 형님. 물론 우리 손에만 들어온다면 말이죠.”'대한은 고개를 몇 번 끄덕거리고는 큰 소리로 말했다.'“오늘 회식은 여기서 한다!”'송근우가 뒤편에 죽 서 있는 부하들에게 손짓을 한 뒤, 대한을 식당 쪽으로 안내했다. 산 아래인데다 주변에 집들이 없고 외져서 그런지 공기마저 달랐다. 대한은 느긋하게 청량한 공기를 몇 번 들이마셨다 내쉬었다 하기를 반복하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그들이 식당으로 들어가 안쪽 방의 큰 회식 자리에 모두 착석한 지 얼마 안 되어 한 여자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대한은 무심결에 눈동자를 여자에게로 향했다가 동공이 짧게 흔들렸다.'여자는 전형적인 한국 미인이었다. 백옥 같은 피부에 적당히 둥글린 검고 짙은 눈썹. 그 아래 가늘게 보일 듯 말 듯 속 쌍꺼풀진 눈. 반월(半月)처럼 그려진 눈매는 그녀의 영민함을 더해 주었고, 그리 높지도 낮지도 않은 콧대와 엷은 립스틱을 발라 촉촉한 입술은 이지적이고도 자존심이 강해 보였다. 가르마를 흐트러짐 없이 양옆으로 갈라 단정히 하나로 땋아 내린 긴 머리카락, 귀밑으로 한 가닥 늘인 잔머리는 단아함을 더해 주었다. 옥빛 한복 앞으로 모아 쥔 여자의 손에는 짙은 색의 옥 반지가 끼어져 있었다. 워낙 이목구비가 또렷한 탓에 짙은 화장을 하지 않고도 그녀의 미모는 대한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한국적인 자태와 은은히 풍겨오는 향기에서 그녀 깊숙이 내재되어 있는 내공을 느낄 수 있었다.'‘여간내기가 아니겠군.’'대한은 눈빛을 번쩍이며 여자를 응시하다 한쪽 입가를 슬쩍 말아 올렸다.'‘맘에 들어.’'여자도 흔들림 하나 없는 눈동자로 그의 시선을 받아내고 있었다. 오히려 흔들리기 시작한 건 대한 쪽이었다. 더욱이 여자가 그리 침착한 태도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자, 먼저 시선을 피하기도 어려워졌다. 마치 눈싸움이라도 벌이듯 그렇게 있기를 잠시, 여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어서 오십시오.”'다소곳한 인사와 함께 공손한 말투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그는 싱긋 웃고 난 뒤 대뜸 물었다.'“당신이 이곳 주인, 윤수은이요?”'초면에 무례한 질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수은은 얼굴빛 하나 바뀌지 않았다. 이런 손님은 더러 있기 마련이다. 게다가 보아하니 주먹패의 우두머리인 것도 짐작할 수 있었다. 무사의 눈썹처럼 짙고 거칠며 끝이 약간 위로 치켜 올라간 모양은 호방한 기질을 엿볼 수 있었다. 코는 콧대가 우뚝한 반면, 콧방울에 살집이 통통하고 동글동글하여 잘 익은 마늘 같았다. 입술은 부드러운 기가 하나도 없이 심술궂게 다물어져 있었다. 무척 강한 인상의 남자다. 한 번 보면 다시는 잊히지 않을 정도로. 그간 수많은 손님들을 대해 왔지만, 이토록 선명하고 또렷하게 머리에 박히는 사람은 없었다. 수은은 문득 자신이 잡초 밭에 서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를 중심으로 하여 일렬로 죽 앉아 있는 조직패들은 그녀의 기를 단박에 죽여 놓을 만도 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침착함을 잃지 않는 그녀의 성품으로 인해 그들은 단지 손님에 지나지 않았다. 잡초 같은 손님들.'미리 예약한 대로 준비는 착착 진행되었다. 음식이 거의 상 위에 차려졌을 즈음이었다. 별안간 밖에서 와장창 하는 소리와 함께 손님들의 잇단 비명이 들려왔다. 익숙한 소리에 젓가락을 들던 대한의 손이 멈칫했다. 그는 인상이 구겨지며 눈 속에 예리하게 날이 섰고, 곁에 앉았던 송근우도 표정이 굳어졌다. 일순 방 안에는 냉랭한 긴장감이 서렸다.'방 안으로 한 무리의 사내들이 들이닥친 것은 그때였다. 선두에 섰던 자가 부하들을 향해 급히 소리쳤다.'“쳐!”

미리보기 끝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