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숙한 동굴 안에 한 마당은 됨직한 보기 드문 커다란 호수가 그 품에 맑고 깨끗한 물을 한 아름 담고 있었다. 잔 바람도 들어오지 않아, 수면 위는 일렁이는 일없이 잔잔했다. 가끔씩 동굴 천장에 불쑥불쑥 솟아나 있는 각양각색의 종유석들이 눈물처럼 작은 물방울들을 떨어트려 수면 위에 여러 개의 둥근 원을 그려냈다. 똑똑, 떨어지는 물소리 외에 다른 소리는 없었다. 동굴 벽에 군생하는 반짝이는 이끼의 빛에 반사된 종유석의 흰 기둥들이 아름다운 무지개 빛을 발하며 어두운 동굴 안을 약하게나마 밝혀주었다.'백년, 천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을 것 같던 공간이 뭔가를 느낀 듯 부스슥부스슥 흔들리기 시작했다. 한 번에 하나씩 변하던 무지개 색들이 평소보다 몇 배는 강한 빛을 뿜으며 현란하게 색을 바꿨다. 적, 황, 녹, 청, 남, 자색으로 동굴 안을 환하게 물들이던 빛이 천천히 본래의 담담한 모습으로 돌아갔을 즈음이었다. 동굴을 따라서 색색깔로 물들었던 호수의 수면이 거친 풍랑을 만나기라도 한 듯 높게 파도치더니 불쑥 커다란 그림자를 수면 위로 토해냈다.'쿨럭! 염휘는 물 밖으로 나온 젖은 머리를 흔들며 삼킨 물을 내뱉었다. 텅 빈 폐 속에 물 대신 공기를 집어넣었다. 그 여우 노인네, 무조건 물로 뛰어들라고 하더니, 다 까닭이 있었군. 콜록, 콜록! 잔기침을 밭으며 휘청거리는 사란을 팔로 단단히 그러안으며 어기적어기적 호수 중앙에서 가장자리로 나아갔다. 넓은 크기에 비해 수심은 그리 깊지 않았다. 딱 염휘의 턱까지 물이 다다랐다. 사란을 끌어안은 자세를 고쳤다. 바들거리는 몸을 마주 안아 그녀의 얼굴을 자신의 어깨판과 목덜미 사이에 묻었다. 기력이 다한 듯 그녀는 순순히 그가 하는 대로 따랐다. 희미하고 얕은 숨결이 축축하게 젖은 옷깃을 통과해 맨살에 닿았다. 어깨에 기댄 작은 머리가 힘없이 늘어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보호하듯 그 작은 몸뚱이를 좀 더 세게 감싸 꽉 끌어안았다.'이끼가 깔린 바위 위에 주저앉은 염휘는 머리를 동굴 벽에 기댔다. 아찔한 순간이 떠올라 절로 그녀를 안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물에만 들어가면 무사하다는 식으로 말을 한 그 노인네의 털을 모조리 뽑아버리리라. 산에 있는 요괴가 물 속이라고 없을까. 몸을 빼냈다고 잠시 맘을 놓은 사이 계곡의 물 속에 살고 있는 교(蛟)에게 잡아먹힐 뻔했다. 오래된 박달나무보다 더 굵은 몸통을 한 뱀이 머리에 붙은 붉은 두 눈으로 자신들을 노려보며 잡아먹으려는 듯 커다란 입을 아래위로 사정없이 벌리는 것이 아닌가. 손에 들린 검으로 하늘바위만큼 큰 교의 입 사이에 칼침을 넣어준 후 자신들을 끌어당기는 이상한 힘에 이끌려 이곳으로 나온 것이다. 물 속에 인위적인 통로가 만들어져 그 수로(水路)를 통과한 느낌이었다.'“네가 부린 힘인가?”'맥없이 기대어져 있던 작은 머리통이 움찔거렸다. 커다란 손이 사란의 뒷목을 잡았다.'“지금껏 네게 아무 것도 묻지를 않았었다. 때가 되면 네가 말해주리라 여겼기에. 근데 더 이상은 기다릴 수 없다. 대체 홍랑이 훔친 물건이란 무엇이지? 홍랑을 잡기 위한 쌍으로 이뤄진 반대 물건은 또 무엇인가? 너와 홍랑은 무슨 관계이며, 어디 출신인 것이냐?”'벼락처럼 연거푸 떨어지는 질문들. 불시의 공격에 뒤틀려 버린 기를 바로잡으려고 애쓰던 사란의 하얀 얼굴에서 그나마 남아 있던 생기마저 사라졌다. 이 지경에 이르렀으면서 모른 척 넘어가리라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옥환, 아니 홍랑의 거처를 같이 가기로 했을 때부터 어쩌면 모든 걸 털어놓게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이렇게 당장 다그칠 줄은 몰랐었다. 자신의 품안에 꼼짝달싹 못하도록 붙잡아 앉힌 뒤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