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던트 3년차에 접어든 3월은 참 따사로웠다. 고된 인턴생활과 레지던트 1, 2년차의 생활은 하영에겐 그동안 경험해보지 못한 끔찍할 만치 피곤한 생활의 연속이었다. 하루 맘 편히 쉬었던 날을 손꼽을 정도로 그녀는 병원에서 3년의 시간을 보냈다.'흉부외과 레지던트 생활은 다른 과에 비해 피 말릴 정도로 최악이었다. 감히 최악이라 말할 수 있는 건 그녀가 3년의 시간 동안 몸소 체험했기 때문이었다. 하루 24시간 중 겨우 서너 시간만 수면을 취할 수 있었고, 가끔은 그것마저 허락되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만큼 고된 삶의 연속이었다.'차창 너머 쏟아지는 아침 햇살을 온몸으로 만끽하며 하영은 진한 커피를 입에 가져다 대었다. 중독이었다. 쓴 커피 한 잔이 주는 안정감은 피로를 조금이나마 풀어주었기에 끊으려야 끊을 수 없었다.'커피 한 잔의 여유를 잠시 즐기고 돌아온 병동 안은 여전히 분주하게 돌아갔다. 조용한 듯하지만 각종 의료기로 끊임없는 소음이 일어났고, 인공호흡기에 의존한 환자들의 호흡소리가 애달프게 울리기도 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일어나는 발작과 어레스트(심장정지) 상황은 병동의 분위기를 살벌하게 하기도 했다. 오늘 하루만큼은 특별한 일 없이 환자들이 편하기를 기도하며 하영은 흉부외과 병동으로 들어섰다.'하영이 병동 안으로 들어서자 왼쪽 끝에 인공호흡기를 단 환자의 알람이 격렬하게 울려왔다. 오늘 하루는 평온하길 바랐던 그녀의 바람은 그렇게 순식간에 바람처럼 날아가 버리고 위급한 상황은 또다시 벌어졌다. 곧장 환자에게로 다가선 하영은 호흡곤란을 일으키는 환자와 마주했다. 모니터 속 바이탈이 불안정한 상태로 흔들렸다.'“선생님.”'유미애 간호사가 다급하게 하영을 불렀다.'“기흉이에요. 체스트튜브 준비해 주세요.”'하영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유 간호사가 분주하게 몸을 움직였다. 장갑을 끼고 마취주사기를 집어든 하영의 온몸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 모습을 유 간호사 역시 긴장한 채 바라보고 있었다. 환자의 호흡곤란이 점점 심해지자 하영은 절개선에 튜브를 집어넣고 고무튜브 끝에 켈리를 잡고서 플라스틱 통에 연결했다. 하영의 응급조치로 호흡곤란을 일으키던 환자가 안정을 되찾아 바이탈이 정상으로 돌아오자 두 사람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호전되는 상황 좀 더 지켜봐 주세요.”'“알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아내며 하영은 아침 회진 준비를 위해 스테이션으로 향했다. 회진 준비로 분주한 1, 2년차 후배들의 모습이 하영의 두 눈에 들어왔다. 하영이 그들 가까이 다가서자 영석과 승주가 가볍게 목례를 했다. 피로에 찌든 그들의 모습을 보자 하영의 마음 역시 편하지만은 않았다.'“피곤하지?”'“괜찮습니다.”'2년차 영석이 재빨리 하영의 말에 대답했다.'“선생님, 어디 아프십니까?”'영석 옆에 서 있던 1년차 승주가 하얗게 질린 하영의 얼굴을 보고 묻자 그녀는 해맑게 미소 지었다.'“난 괜찮아. 나보다 너희들이 곧 죽을 표정인데.”'“정말 죽겠습니다. 잠 한번 실컷 자보는 게 1년차의 꿈입니다. 제 몰골을 보십시오. 이게 사람 얼굴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