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날 만에 만난 수연은 누가 보더라도 전과 판이하게 다른 모습이었다. 얼굴도 많이 야위고 그리 몸이 고돼서 그런지 웃음기도 완전히 사라졌다. 그래도 윤호의 앞에서 흔들리지 않는 모습으로 앉아 있는 그녀를 보니 윤호는 한편으로는 쓰리고, 또 한편으로는 다행이라 생각이 들었다.'“괜찮으십니까.”'“응.”'“약은 드셨습니까.”'“응.”'“…….”'“…….”'항상 그가 한마디를 하면 열 마디 이상의 답변으로 듣는 귀를 즐겁게 해주던 수연이었는데 어쩜 이리 간단한 대답인 것인지. 그런 모든 상황을 자신이 만든 것이니 그녀를 향해 서운함을 갖지도 못하는 윤호는 한숨만 내리깔았다.'“오늘은 어찌하면 되겠습니까, 서방님. 지난번처럼 적삼과 속치마, 그리고 다리속곳만 남기고 모두 벗으면 되는 것입니까?”'아마 스무날 동안 아프면서 내내 그리 되새김질을 했을 것이다. 그녀가 열흘에 한 번씩 찾는 이곳은 청등관이고, 그녀 앞에 앉아 있는 그는 사내 윤호가 아닌 적월당 애사라는 것. 그리고 그의 앞에서 옷고름을 푸는 것은 정인과 따뜻한 교감을 나누기 위함이 아니라 앞으로 생길 지아비에게 사랑을 듬뿍 받기 위해 잠시 거치는 과정일 뿐이라고 말이다.'“왜 아프셨습니까.”'“아픈 데 이유가 있겠어?”'“어찌하여 가마를 타지 않으시고 비를 맞으신 것입니까.”'“……가끔은 걷고 싶을 때도 있는 거야.”'“어찌하여 올리는 탕약도, 죽도, 과일도 아무것도 드시지 않고 눈물만 흘리신 것입니까.”'사과를 하려면 이리 말문을 열면 아니 될 텐데. 시작부터 잘못되어 윤호는 사과 대신 그녀를 나무라는 것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고 있었다. 멈춰야 했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제가 밉고, 제게 서운하셨다면 절 벌하셔야지 왜 마마께오서 아프신 것입니까.”'“그런 것…… 아니다. 금영이가 괜한 말을 떠벌였는가 보구나. 이젠 정말 괜찮다.”'“마마의 몸과 마음을 태우고 둥둥 떠다녔던 구름에 제 마음도 함께였습니다. 그 구름 위에 마마와 함께 몸도 마음도 같이 머물러 있었습니다. 제가 함께 있지 아니했다는 말, 거짓이라는 것을 정녕 모르셨단 말입니까.”'“…….”'“마음을 억지로 드리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억지로 마음을 가지 못하게 붙잡고 있다는 것을 정말 모르셨단 말입니까!”'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참 좋겠다. 그리 모든 것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정말 좋겠다. '답답함도, 속상함도, 안타까움도 모두 그리 퍼부을 수만 있다면 정말 좋겠다. '수연을 보면서 윤호는 내내 자신의 감정 표현에 익숙하지 못했던 것을 한탄스러워했다.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 마음을 숨기는 것보다 훨씬 어려울 것 같았는데 수연을 향해 한번 터진 마음은 봇물 흐르듯 줄줄줄 쉬지 않고 끊임없이 새고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