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하게도 멍들었네.’'정원은 손등에 퍼렇게 든 멍을 보며 혀를 찼다. 아마 지금쯤 얼굴에는 온통 상처투성일 게 분명했다. 그는 욱신거리는 뺨을 손으로 감쌌다. 막 맞았을 때는 잘 느끼지 못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통증이 더욱 심해졌다. '미처 거울을 보지 못했지만 그를 본 주위 사람들의 반응으로 충분히 지금 어떤 얼굴인지 짐작이 갔다. 등교 시간이라서 더 많은 학생들 눈에 띄었다. 그들은 마치 해충을 보듯 그를 피했다. '출근시간과 등교시간이 겹쳐서 버스는 만원인데도, 그의 주위는 언제나 한산했다. 늘 이런 얼굴이니 옆에 오기 무서워하는 게 무리도 아니었다. 이해는 하지만, 그런 여러 가지 정황들이 겹쳐지자 정원의 기분은 음울해졌다. '그라고 늘 상처투성이인 모습이 즐거운 건 아니다. 될 수 있으면 다른 학생들처럼 평범한 삶을 살기 원했다. 하지만 열여덟 살, 정원에게는 세상을 바꿀 힘도, 주변 사람들에게 녹아들어갈 재간도 없었다. '오래전부터 익숙한 시선, 환경에 적응하는 수밖에 없었다. 주변에 사람이 다가오지 않고, 혐오감을 가지고 자신을 바라본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고 단념했다. 자신의 이해자가 한 명이라도 있는 것에 만족했다.'‘정원이, 너 얼굴이 이게 뭐야? 오늘은 내가 꼭 찾아가야지!’ 이 얼굴을 보며 그리 말할 사람 얼굴이 떠오르자 정원은 피식 웃고 말았다. 하지만 잠깐의 미소는 금세 사라지고 어두운 얼굴을 내렸다.'정원은 무참하게 짓밟혀 엉망진창이 된 왼손과 달리 흠집 하나 없이 깨끗한 오른손을 펼쳤다. 감각을 확인하듯, 주먹을 쥐었다, 다시 펴기를 반복했다. 위화감 없이 감각 하나, 하나가 선명했다. 그 결과에 만족스럽게 정원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괜찮네?”'오른손을 보호하느라, 더 많은 상처가 났는데 이 정도야 당연하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우려를 했는데, 이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겨우 한숨을 돌렸다. '지금도 학생주임이 조례시간 전에 선도부원들을 끌고 교실을 돌아다니기 때문에 일부러 피신하는 거였다. 만일 학생주임이 이 얼굴을 보면, 당장 기합을 줄 게 분명했다. 다른 건 다 괜찮은데, 학생주임은 약간 악질이라 다른 데도 아니고, 손등을 때렸다. 일전에 한 번 피하지 못하고 손등을 맞았었는데 이틀간은 아파서 연필 쥐는 것도 힘들었다.'그를 잡아 죽일 듯이 미워하는 학생주임에게도 사정이 있겠거니 생각했다. 정원은 문득 고등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을 떠올렸다. 주번이라서 교실을 정돈하고 일지를 교무실에 가져다 놓으러 갔을 때, 그는 학부모로부터 하얀 봉투를 받고 있는 학생주임을 보았다. '그를 보고 하얗게 질리며 곧 일그러지던 학생주임의 얼굴도. 그 후로 학생주임은 작정하고 정원을 몰아세웠다. 어디까지 참을 수 있느냐 한계가 어디인지 알아보려는 것처럼. 그리고 정원은 자신을 둘러싼 이상한 소문을 듣게 되었다. '소년원 출신이라느니, 사람을 죽였다느니, 혹은 어느 조직폭력배의 아들이라느니 하는 무수한 꼬리표가 그의 뒤를 따라다녔다. 거의 성할 날이 없는 그의 얼굴은 그 소문을 입증하는 듯 보였고, 그는 학교에서 이단아가 되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학생주임이 비릿하게 웃는 모습은 자신의 착각이라고 생각하려 했다. 학교만 졸업하면 된다. 무슨 일이 있어도 퇴학은 안 된다. 번번이 학생주임이 퇴학을 시킬 수 있다는 으름장을 놓았다. 건수가 생기지 않게 정원 쪽에서 피하는 수밖에 없었다. 조용히, 다른 사람들 눈에 띄지 않고 학교를 무사히 마치고 싶었다. '이 학교는 산을 깎아서 지었다. 그 때문에 학교 뒤편에는 아직도 산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뒷산은 나무가 무성히 자라 있어서 다른 사람들 눈에 쉽게 띄지 않았다. 첫 수업이 시작하기 전까지 여기에 숨어 있으면 됐다. '때 아닌 등산을 하게 된 정원은 산을 오르다가 모르고 돌을 밟았다. '“앗.”'작은 비명을 지르며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그는 고통스러운 얼굴로 오른 다리를 붙잡았다. 돌 때문에 발이 조금 삐끗했다. 하지만 단순히 발목을 삐끗한데 그치지 않고 그 여파는 척추까지 번졌다. '무릎을 굽히느라 살짝 드러난 바짓단 아래 좀 전에 조금 삐끗한 걸로는 볼 수 없을 만큼 퉁퉁 부어 있는 발목이 드러났다. 이러니 작은 비틀림에도 큰 고통이 수반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다친 부위가 그 상처가 심한지 괴롭게 일그러진 얼굴에 송골송골 식은땀이 맺혔다. 차마 큰소리를 낼 수도 없는 고통에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정원은 바로 옆에 있는 두툼한 동백나무에 기대고 허리를 굽혔다. 바지를 들어 올렸는데 상처는 생각보다 심했다.'‘맞은 곳이 안 좋았나.’'날아오는 술병을 피하다가 잘못해서 복사뼈에 맞았다. 지금까지 걸었던 걸로 봐서 뼈에 이상이 있는 건 아닌 것 같은데, 방금 전, 돌을 밟으면서 상처에 더 충격을 준 듯했다. 발을 디딜 엄두가 나지 않아서 정원은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 겉에 나타난 상처보다도 그는 더 깊은 곳이 욱신욱신 쑤셔 왔다. 정원의 귓가에 나직한 목소리가 들렸다.'‘미안하다. 미안하다, 정원아. 미안하다. 미안해.’'끊임없이 그에게 용서를 구하는 목소리. 정원은 밉지 않았다. 하지만 이 마음을 전해도 상처만 된다는 것을 알기에 잠든 그를 향한 사죄를 묵묵히 눈을 감고 듣고만 있었다. 노력을 전혀 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쉽지 않은 게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을 잘 알았다. 다정한 그 사람을 알기에 정원은 미워하지 않았다. '“그쪽 잘 찾아봐!”'학생주임의 목소리가 멀리에서 들려왔다.'“선생님, 없는데요?”'“이 새끼가 어디로 토낀 거야?”'아마 교실에 들렀다가 그가 학교에 온 걸 본 학생들에게 이야기를 듣고 찾아 나선 모양이었다. 발목도 좋지 않은데 여기에서 부딪치게 되면 이유는 불문하고 기합을 주려고 할 게 분명했다. '평생 피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지만 지금 당장은 피하는 수밖에 없었다. 학생주임의 목소리가 점점 가까워지자 정원은 절뚝거리는 다리를 끌고 산 속 깊숙이 들어갔다. 학생들의 출입을 금지시킨 터라 그 이상, 들어갔던 적이 없었다. '그런데 학생주임이 오늘은 단단히 벼르고 있는 듯해서 할 수 없이 수풀을 헤치면서 원치도 않은 탐험을 해야 했다. '아침이었지만, 무성한 나무 그늘 때문에 산 속은 어두컴컴했다. 움직일 때마다 몸을 때리는 나뭇가지를 치우며, 나무 틈새로 스며들어 오는 빛줄기를 따라 걸었다. 이미 학생주임의 목소리가 사라진 지 오래였지만, 그는 미처 깨닫지 못했다. '한 발짝, 떼는 순간, 산산이 부서지는 빛 조각들이 그의 눈앞에 펼쳐졌다. 일순,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은 착각을 일었다. '갑자기 시야가 환해지자 정원은 눈이 부셔서 앞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를 일깨운 건 어떤 소리였다.'‘비?’'정원은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러나 아침 기상예보처럼 하늘은 맑기만 했다. 어찌된 일인지 영문을 몰라 하던 정원은 귓가에 들리는 소리에 집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