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지자. '회사에서 인수하기로 한 고급 요정에서 어이없게도 난 그 때의 일을 떠올리고 있다. '……헤어지자. '그녀의 목소리가 고장 난 레코드에서 나는 소리처럼 자꾸 귀를 맴돌았다. '……헤어지자. '잊었다고 생각했던 내가 바보다. 난 그녀를 조금도 잊지 못했다. 난 여전히 그녀를 기억하고 있고, 또 미워하고 있으며, 그리고…… 사랑하고 있다. '“그럼 이곳에 사인을…….” '요정의 실질적 주인이었던 한 기업의 사장이 비굴한 미소를 지으며 서류를 내밀었다. 최근 불황으로 인해 부도 위기를 맡게 된 이 회사 사장은 궁여지책으로 소유하고 있던 요정을 팔기로 했고, 요새 시세보다 훨씬 더 비싼 값을 부른 내 마음이 변할까 봐, 이렇게 자존심을 버리고 내게 굽실대는 중이다. 나보다 20살은 넘어 보이는 사람이……. '가끔은 내가 능력 있는 남자가 된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된다. 적어도 나보다 나이가 많은 녀석에게 굽실대며 비위를 맞춰줄 필요는 없으니까……. 그런 일 따위는 정말 질색이다. '……헤어지자. '어째서 자꾸 그녀의 목소리가 떠오르는 건지 모르겠다. 아니, 왜 하필이면 헤어지자는 말이 떠오르는 건지 모르겠다. 그녀가 그 곱던 목소리로 내게 했던 말은 그 말뿐이 아닌데……. '.'.'“헤어지자.” '난 멍하니 그녀를 쳐다보았다. '처음 본 순간 반해버린 커다란 눈망울, 길고 매끄러운 목과 도톰하고 귀여운 입술, 허리까지 닿는 긴 머리카락……. '길고 부드러운 그 머리카락. '“응? 뭐라고?” '되묻는 나를 보며 그녀는 얼굴을 찡그렸다. '“헤어지자, 지원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헤어지자는 말이 너무 커다란 충격이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바보처럼 멀거니 그녀만 쳐다봤다. '그 상황에서도 그녀는 몹시 아름다웠다. 난 그녀를 사랑했다. 한동안 알 수 없는 눈빛으로 날 응시하던 그녀는 차갑게 몸을 돌려 내 앞에서 떠나갔다. '그해 겨울은…… 몹시 추웠다. '.'.'“최 사장님?” '“아…… 이런. 제가 잠시 딴 생각을…….” '난 서류를 대충 훑어본 후, 사인을 해야 하는 자리에 사인을 하고는 서류를 건네주었다. 사장은 기분 좋은 듯 웃으며 말했다. '“이 요정에서 가장 잘 나가는 아이를 한 번 만나보시겠습니까?” '“아니, 괜찮습니다.” '“하하하. 단란주점 같은 곳은 아니니 걱정하시지 않아도 됩니다. 최 사장님께서 애인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아는데, 제가 어찌 그런 것을 권하겠습니까. 그저 옆에서 말동무가 되어드리고 술시중을 들뿐이랍니다. 단란주점에서 하는 저속한 행동들은 아무리 돈을 많이 준다고 해도 우리 쪽에서 사양이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