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 만나고 싶다 하셨다고요?”'보이고 싶지 않은 듯 초조한 기색을 애써 감추는 중년 남자와 달리 밖에서 들어오는 젊은 남자의 걸음걸이는 무척이나 자신감 넘쳐 보였다.'“……잘, 지냈나?”'“뭐, 덕분에. 그런데 절 보자고 하신 용건이 안부인사는 아닐 테고 무슨 일이십니까?”'남자는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한 눈길로 자신을 찾아온 불청객을 바라봤다. 그러자 중년의 남자는 잠시 망설이는 듯한 기색을 보이더니 입을 열었다.'“부탁이, 있네.”'“부탁이라…… 하 회장님께서 저에게 하실 부탁이라면 돈인 거 같은데, 맞습니까?”'“마지막이네. 이번 위기만 넘기면 자네 돈은 어느 정도 상환이 가능할 걸세.”'“이번에는 얼마입니까?”'“10억이네.”'10억이라는 말에 그는 피식 웃어 버렸다. 그러자 중년의 남자는 순간 얼굴 안색이 굳어졌다. 그는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아, 미안합니다. 하 회장님의 태도가 우스워서요.”'“뭐라고?”'“마치 저한테 돈을 맡겨 놓기라도 한 것 같군요.”'“이보게…….”'“안 되겠습니다.”'“뭐라고?”'그는 하 회장의 말이 이어지기 전에 단도직입적으로 딱 잘라 말했다. 그러자 하 회장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가는 게 눈에 훤히 보였다.'“회장님은 제가 뭐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그건…….”'“다들 절 기업 사냥꾼이라고 부르죠.”'“이보게, 그러니까 회사를 담보로…….”'“80억입니다.”'“…….”'“80억이면 빚더미에 앉아 있는 회장님 회사의 소유권을 넘겨받기에 충분한 돈인 것 같은데요.”'그의 말에 하 회장의 얼굴은 새까맣게 변해 가기 시작했다. 그가 손만 휘두르면 자신의 회사가 마치 도미노 놀이처럼 와르르 무너져 내린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은 것일까? 그의 한쪽 입술이 치켜 올라갔다.'“그래서, 돈을 빌려 주지 못하겠다는 건가?”'“제가요? 후후, 제 말뜻을 오해하신 모양이군요. 돈을 빌려 주면 나에게 돌아오는 수익의 대가가 적지 않은데 싫다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그럼 자네가 하고 싶은 말이 뭔가?”'“간단하죠. 또 다른 담보가 필요합니다.”'그는 정확하게 하 회장의 눈을 응시하며 말했다. 그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드러나지 않은 채였고 하 회장의 이마에서는 언제부터인지 식은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