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빈은 사뭇 불쾌한 표정으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콰당탕 하고 넘어진 의자의 굉음이 귓전에 내내 머물렀지만, 친구들의 이죽거림이 한동안 머릿속을 흩뜨려 놓았지만 더 이상 그곳에 머물렀다간 자신이 정말 총각보살이라도 될 것만 같았다.'“난 사학을 공부하는 것이지, 무속이라든지 환생이라든지 그런 걸 공부하는 게 아니라고. 알겠어? 쉰 소리 좀 작작해!”'내내 미술로 살았던 우빈이었다. 대학 역시 회화 전공으로 들어왔던 우빈이었지만 동양화를 그리면서 한국의 미술 흔적에 눈을 뜬 그는 급기야 한국 역사의 깊은 매력에 빠지게 되었다. 다시 시험을 치러 한국사학과에 진학한 우빈을 4년 내내 함께 그림을 그렸던 동기들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던 게 어쩜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게다가 윤리 시간에나 들었던 토테미즘이니 샤머니즘이니 하는 졸음을 동반하는 사상과 함께 자신이 배우는 것을 신이 나서 열변을 토하는 우빈 자신을 친구들이 이해해 주기에는 그들 사이의 벽이 너무도 높기만 했다. '그림을 보면서 한국의 멋을 알았다. 아니 한국의 멋이라기보다는 선조들이 살았을 때의 시대상이 궁금했다. 그 궁금증이 전과를 하게 만들었을 따름이지만, 광적으로 들떠 이야기를 늘어놓는 우빈에게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무속신앙을 배우는 것이 아니냐고 우스갯소리를 던진 친구에게 우빈은 적잖이 실망하고 말았다.'미술 동아리 방을 박차고 나온 우빈은 땅바닥으로 한숨을 내뱉었다. 그것만이 그가 터득한, 치솟는 화를 삭이는 유일한 방법이었던 것이다. 가끔은 자신의 마음에 내키지 않거나 자신의 화를 돋우는 상대에게 주먹이라도 날리고 싶었지만 이렇게 한숨을 한번 쉬고 생각해 보면 어쩜 자신이 친구들에게 너무 자신의 생각을 주입하려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 같은 현실을 자신도 잘 알기에 친구들에게 자신을 이해시키기 위해 애쓰는 것은 쓸데없는 노력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자학도 해보았다. '우빈은 거칠게 예술 대학부 건물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달리기 시작했다. 땀이라도 흘려볼 심산이었다. 하지만 우빈은 3분도 채 뛰지 못하고 사회대 동에서 멈추어 서고 말았다.'너무나도 맑게 웃는 그녀였다. 적당히 큰 키에, 하얀 그녀의 볼과 반듯한 치아에 내리쬔 햇살이 유난히도 밝은 빛을 발했다. 그녀 앞의 남자도 세상의 행복은 다 자신의 것인 것 양 함박웃음을 띄우며 그녀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비벼댔다. 그녀는 남자의 목을 감싸 안았다. '우빈은 그런 그들의 모습을 그렇게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바라보았다.'“서희야!”'“우빈아!”'캠퍼스에는 빗소리와 함께 두 사람의 이름이 울려 퍼졌다. 때마침 멀리서 떨어지는 천둥소리에 그 소리는 삼켜지는 듯했다. 서희는 잠시 뒤를 돌아보았다. '“비 맞는다. 빨리 뛰자.”'남자가 서희를 머리 위로 치켜올린 자신의 가방 밑으로 끌어당겨 비를 피하며 뛰어나갔다. 우빈은 서희와 함께 있던 여인을 불러 세웠다.'“저기, 실례 좀…….”'“무슨 일이세요?”'“아,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