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보이나요?”'“바다…… 바다가 보여요.”'“그리고요? 천천히, 천천히 다가가 보세요. 누가 있나요?”'“여자와 남자, 나…… 내가 보여요. 흑흑, 우어어엉……!”'“어째서 슬픈가요?”'“난…… 그녀를 놓을 수가 없어요. 나의 사랑 서림…… 서림과 사랑만 할 수 있다면…… 죽어서라도 그 사랑을 이룰 수만 있다면…… 흑흑흑…….”'“누가 당신의 사랑을 방해하는 거죠?”'“우어어어엉…… 엉엉엉!”'염 박사는 더 이상 최면을 진행할 수가 없었다. 너무도 처절히 흐느끼는 그녀를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기에 이만 전생으로의 여행을 마쳐야 했다.'서희는 최면에서 깬 후에도 여전히 눈앞에 펼쳐졌던 슬픈 그들의 모습으로 인해 한동안 눈물을 거두지 못했다.''서림, 강휘.'이제는 이름도 생생한, 항상 곁에서 지켜보았던 친구와도 같은, 서희가 전생여행에서 본 그들은 과연 누구일까? '‘그게 정녕 나의 전생의 모습이란 말인가?’'전생을 보았다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서희는 서림과 강휘를 바라보는 동안 그들 역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고 느꼈다.'필시 동시대의 네 사람은 아니었다. 서림과 강휘는 그렇다 치더라도 서희의 꿈에 나오는, 검에 찔려 붉은 피로 물든 한 남자와 피 묻은 검을 들고 오열하던 또 다른 사내는 또 누구란 말인가?'밤마다 되풀이되는 두 남녀의 울음소리와 칼부림에 피가 낭자했던 방 안, 그리고 그 후에 들리는 한 사내의 절규로 인해 서희는 요즘 곤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수면제도 복용을 해봤고, 기절할 만큼 술도 마셔봤고, 아예 잠을 청하지 말자 싶어 3일 동안 철야를 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모든 건 허사였고 서희는 날마다 누적되는 피로와 자신을 괴롭히는 그 네 사람들로 인해 일상생활이 점점 힘들어져만 갔다. 때문에 꿈속의 네 사람을 증오하던 서희는 급기야 증오를 넘어서서 이젠 그 네 명의 존재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만약에 내가 보는 꿈속의 환영들이 내게 붙은 귀신이라면, 차라리 그렇다면 굿을 해서라도 떼 내어 버리고 싶다. 그게 아니라 내게 뭔가를 알려주기 위해 그런다면 그리 울지만 말고 얼른 그 무엇인가를 알려주든지. 그 꿈을 꾸기 시작한 후로 난 모든 게 엉망이 돼버렸어. 일도, 사랑도…… 내 삶 자체가 뒤죽박죽이 되어버렸다고! 얼른 되돌리고 싶어. 지긋지긋하다, 정말!’'그렇게 찾은 정신과였다. 우선은 매일 같은 꿈을 꾸는 이유를 알아야만 했다. 두 남녀가 그렇게 슬픈 눈물을 흘리며 자신을 바라보는 이유를, 꿈에서조차 피비린내를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생생한 두 사내들의 피의 의미를 알고 싶었다.''상담실을 나온 서희는 다리에서 힘이 풀려 도저히 서 있을 힘이 없었다. 아직도 코끝에서는 비릿한 피 냄새가 나는 것 같았고, 눈과 머릿속에서는 네 사람의 잔영이 사라지지 않았다. 서희는 복잡해진 신경을 다듬어보려고 상담실 앞에 놓여 있는 긴 벤치 위에 주저앉았다.'“휴우…….”'깊은 한숨이 대기실 복도를 가득 흐르고 있었다.'“민우빈, 빨리 안 올래?”'서희는 자신 앞에 우뚝 서서 누군가를 부르는 사내를 자못 부루퉁하게 바라보았다. 역시나 자신에게는 이런 작은 여유도 허락되지 않는 것일까? '부쩍 사람에 대한, 그것도 낯선 사내에 대한 거부반응이 심해지는 요즘이었다. 잠시만이라도 휴식이 절실히 필요한 이 순간에 자신의 앞을 가로막으며 수선을 떠는 남자가 서희 눈에 곱게 보일 리가 없었다. 서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힘든 몸을 이끌고 일어나 복도 끝으로 사라졌다.'“말이 신경정신과지, 미쳐 날뛰는 사람을 가두어놓는 그런 곳 아니야.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굴지 마, 자식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