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썩! '소리와 동시에 화영의 뺨에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기쁨에 들떠 반갑게 호텔방 문을 열어 주던 화영은 갑자기 뺨에 가해진 충격에 벌어진 입을 다물 생각도 못 하고 눈앞의 남자를 쳐다보았다. 남자는 분노로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서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왜 이러……?”'그녀가 가까스로 입을 열었을 때 분노를 실은 남자의 손바닥이 또다시 화영의 뺨을 후려쳤다. 화영은 그 힘을 이기지 못하고 바닥으로 무너지고 말았다. 그가 왜 이렇게 화를 내는지 그녀는 아직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왜 그래, 오빠?”'남자가 쓰러진 화영 앞에 한쪽 무릎을 굽히더니 그녀의 머리카락을 뽑을 듯이 한 움큼 잡아챘다. 화영은 울컥 눈물이 났다. 머리가 뽑혀 나가는 것 같은 통증보다 그녀를 더 아프게 한 것은 그에게 예쁘게 보이고 싶어 미용실에서 두 시간이나 정성 들여 꾸민 머리가 한순간에 엉망이 되어 버린 것이었다. '“아악! 도대체 왜 이래? 미쳤어?”'화영은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며 앙칼지게 소리 질렀다.'“그래, 미쳤다!” '남자가 입을 여는 순간, 역한 알코올 냄새가 왈칵 뿜어져 나왔다. 흰자위에 붉은 핏줄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도드라져 있는 남자를 보면서 화영은 비로소 지금 이 장면이 꿈도 장난도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 눈앞에 있는 남자는 그녀가 사랑하던 진우가 아니었다. 전혀 낯선 사람이었다. '“왜, 왜 그래, 오빠? 무슨 일이야?”'부드럽고 온화하던 사람이 갑자기 변해 버린 사실을 화영은 믿을 수가 없었다. '“네까짓 게 감히 날 속여?”'“속이다니?”'그는 그녀가 이해할 수 없는 말만 되풀이했다. '“태성 화학, 무남독녀 외동딸? 웃기고 있네.” '진우가 머리카락을 움켜쥔 손아귀에 힘을 주어 비틀었다.'“아얏!”'머리에 가해지는 고통에 비명을 지르던 화영의 머릿속으로 어떤 생각 하나가 번쩍 스치고 지나갔다. 그의 입에서 태성이란 이름이 나온 건 처음이었다. 처음 교제를 시작했을 때부터 진우는 태성 화학의 외동딸인 화영의 배경을 아주 부담스러워했었다. 그래서 두 사람 사이에서 태성은 금기시 되었던 단어였다. 사실 태성 화학이란 배경을 빼면 그녀는 지극히 평범한 스무 살의 여자 애일 뿐이었다. 아니, 한국 최고의 대학에 다니는 진우에 비하면 입학 원서만 넣으면 누구나 다닐 수 있을 정도인 지방의 전문대학에 다니는 화영이 훨씬 모자라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진우는 화영을 진심으로 사랑해 주었다. '“혹시 엄마 만난 거야? 그래서 이러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