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도란.”'그 밤처럼 이름을 부른다. 이렇게, 조금 절박하게.'“저기, 지금은 한밤도 아니고, 또, 선생님이 보실지도 모르고…….”'미도가 점점 가까워졌다. 도란은 눈을 감아버리고 말았다. 미도의 숨결이 지척에서 느껴지는가 싶더니, 이마가 따뜻해졌다. 이마에 내린 온기가 미도의 입술임을 눈 감고 있어도 알 수 있었다.'하나, 둘, 셋. 거기까지만 머물고서 미도는 물러갔다. 허전해진 이마 위로 실바람이 한 올 스쳤다. 도란은 천천히 눈을 떴다. 도란을 내려다보며 미도가 말했다.'“나도 선물.”'장난기가 스민 어투에 도란은 활짝 웃었다. 눈앞에 선 미도를 보고 있으니 목소리만 곁에 두던 지난 열흘이 어느새 까마득하게 느껴졌다.'“우리 선생님께 아직 인사 안 드렸죠?”'“음.”'“가서 인사부터 드리고 와요.”'“오면? 또 선물 주나?”'“또 어디가 궁금한데요?”'“궁금하다고 하면 다 보여주려고?”'“부끄러운 데만 아니면요.”'“부끄러운 데가 어딘데?”'짓궂게 다가오는 물음이 도란을 떨리게 만들었다.'“그, 그런 걸 뭘 묻고 그래요.”'“귀?”'귀를 보여 부끄러울 건 없지만, 어째 어감이 좀 은밀하게 와 닿았다. 미도의 손길이 귀를 찾아 머리카락을 헤치고 들어온다 생각하자, 등줄기로 짜릿한 긴장이 스쳤다.'“그, 글쎄, 귀는…….”'은은히 미소 지으며 미도가 또 물었다.'“그럼 발은?”'“발? 발이야 뭐, 지금도 다 보이는데…….”'그 즉시 미도의 시선이 도란의 발로 내려왔다. 슬리퍼 앞에 오종종하게 모여 앉은 발가락들이 미도의 눈길에 드러나자, 겨드랑이 아래쪽이 가려워져 왔다.'“뭐, 뭘 그렇게 열심히 내려다 봐요. 부끄럽게.”'“궁금하니까.”'“부끄러운 데야. 그만 봐요.”'“다음엔 귀를 봐야지.”'“안 돼. 귀도 부끄러운 데예요.”'통통하게 우기는 도란을 보며 미도가 조용히 웃었다. 웃음에 그늘이 보이지 않아 마음이 놓였다. 그래서 미루어두었던 물음을 비로소 건넸다.'“집에 생겼다던 일은 잘 해결됐어요?”'“그럭저럭.”'“대답이 좀 애매하네?”'“아, 진짜 선물 가져왔는데.”'“나한테요?”'“도란 씨 방에 갔다 놨어. 가 봐요.”'“뭘까?”'“마음에 들면 귀 보여주기.”'“그럼 마음에 들어도 그렇단 말을 못 하잖아요.”'“표정 보면 알지.”'도란은 살짝 눈을 흘기고는 미도를 앞장섰다. 걸음걸음이 날개를 매단 듯 가벼웠다. 뒤에서 미도의 목소리가 따라왔다.'“부끄러운 데 보인다.”'상큼상큼 걸으며 도란은 두 손으로 귀를 가렸다.'“귀 말고 발.”'“안 보일 걸요?”'“발뒤꿈치.”'“뒤꿈치는 별로 안 부끄러운데요?”'“사과 같아.”'“뭐가요?”'“별로 안 부끄러운 데.”'뺨이 확 달아올랐다. 예쁘다는 말도 아닌데, 가슴이 동당동당 뛰었다. 설렘을 다스리느라 느려진 도란을 미도가 앞섰다. 마당을 가로질러 이강의 방 쪽으로 걸어가는 미도의 뒷모습에 외로움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았다. 붉어진 두 뺨에 뿌듯한 미소가 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