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윽고 순은 12월 10일 옥정에게 종4품 숙원의 첩지를 내리기에 이르렀다. 옹주나 군을 생산하지 못한 궁녀가 후궁의 첩지를 받는다는 것은 실로 파격적인 조치가 아닐 수 없었다. 그에 대신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내었으나, 순은 과감히 귀를 닫았다.'그것은 옥정으로부터 진여를 보호하기 위한 순 나름대로의 조치였기 때문이었다. 바라는 것을 주었으니 옥정이 한동안은 잠잠할 것이라는 계산 하에 내려진 조치였다.'하나 순의 그러한 마음을 알 리 없는 옥정의 기분은 하늘을 찌를 듯했고, 취선당 마당에는 옥정의 새된 웃음소리가 떠나질 않고 있었다.'“감축드리옵니다, 숙원마마.”'“호호호! 마땅히 받아야 할 첩지를 받았음인데 감축할 것이 무에 있겠느냐.”'“그렇사옵니다. 전하께서 총애하심에 비해 늦은 일이옵지요, 숙원마마.”'철생이 곁에 앉아 말끝마다 숙원마마를 달고 옥정의 기분을 맞추었다. 그에 고무된 옥정은 입이 귀에 걸리도록 웃으며 기쁨을 한껏 누렸다.'“그것 보아라. 울고 보채는 아이에게 떡 하나 더 집어 준다는 옛말이 그른 말이 아니질 않느냐. 필시 중궁전에도 대전과 내통하는 상궁이 있을 터, 내가 한 이야기가 고스란히 흘러들어갔을 것이다. 게다가 전하께 중전이 나를 무시한다는 말씀도 올려두었으니 진정인 줄 아셨던 게지. 전하께서 아끼는 여인이 무시를 당한다는데 마음이 좋으실 리 있으셨겠느냐?”'“예, 이것이 다 영명하신 숙원마마의 혜안이시지 무엇입니까요.”'“혜안? 호호호호!”'철생이 들려주는 귀가 즐거운 말에 옥정의 웃음은 그칠 줄을 몰랐다. 그런 웃음이 한동안 이어지더니 별안간 뚝 그쳤다.'“천하의 이 장옥정이가 종4품 숙원으로 만족할 듯싶으냐? 뒷방 신세 못 면하는 귀인도 종1품의 첩지를 받았는데 이 몸은 정1품 빈은 되어야지 않겠느냐?”'“맞는 말씀이십니다요, 숙원마마.”'“그래, 하나하나 밟아 올라가면 될 것이야. 이제 시작인 것을…….”'숙원의 첩지가 내려진 것이 기쁘기는 하나, 성에 차지 않는 옥정이 눈을 빛내며 본격적으로 욕심을 내기 시작했다. 이제 남은 것은 원자를 회임하는 것이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거리낄 것이 무에 있겠는가.'왕자만 낳을 수 있다면 그 흔한 공주조차 낳지 못하는 중전을 밀치고 자신이 그 자리에 들어앉는 것도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었다. 진여가 앉아 있을 중궁전 쪽으로 시선을 돌린 옥정의 얼굴에 탐욕스러운 미소가 한 가득 들어찼다.''대조전에 앉아 멍하니 서안을 바라보는 진여의 눈에 초점이 없었다. 얼굴에 생기라고는 한 올도 찾아볼 수 없게 초췌했고, 반짝이던 눈망울은 빛을 잃은 지 오래였다. 누구도 보고 싶지 않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리 할 수 없는 것이 못내 힘이 들었다.'그때 조심스러운 기척이 들리더니 아뢰는 말이 있었다.'“마마, 한 상궁이옵니다.”'“들게.”'중궁전 지밀상궁인 한 상궁이었다. 무슨 일이 있는지 이 겨울에 발갛게 상기된 얼굴을 한 한 상궁은 종종걸음으로 내전으로 들어섰다.'“무슨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