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 "여보! 여보!"'' 성마르게 외치는 종욱의 목소리가 주방으로 울리고 있었다. 아침 식탁을 차리는 데 분주하던 희정은 냉큼 젖은 손을 앞치마에 훔치며 허둥지둥 침실로 향했다.'' 저기압! 오늘도 남편은 심기가 안 좋은 모양이었다.'' 조금 전 욕실에서 나온 종욱은 젖은 머리를 말리지도 않은 채 와이셔츠에 팔을 꿰고 있는 중이었다. 바쁜 손놀림엔 짜증이 가득했고 얼굴엔 부족한 인내의 흔적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었다.'' 또 무엇 때문에 저럴까?'' 희정은 남편의 성깔에 숨죽인 기분이다가 물기가 축축한 그의 머리를 보자 불현듯 염려가 일었다. '' 드라이어로 잠깐 말리지 않고…….'' 전 같으면 아들의 얼굴이 들어 있는 그의 얼굴을 잡고 젖은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가지런히 넘겨 주었을 텐데, 그랬다면 이전의 남편은 아마도 한 쪽 볼에 볼우물을 만들며 그녀를 번쩍 안아 들고는 오랜 시간 놓아주지 않으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종욱은 말 붙이기조차 조심스러운 상태여서 희정은 선뜻 다가서지 못 하고 있었다. 게다가 찌푸린 얼굴을 하고 있는 그에게서 대뜸 튀어 나온 말이란.'' "어제 내가 보던 서류 어디다 치운 거야?"'' 역시, 녹록한 심사가 아니었다. 하긴, 요즘 들어 언제 한 번 유쾌한 얼굴이었던 적이 있었던가. 아니, 아니지. 요즘 좀 예민해서 그래, 저 사람.'' 희정은 한숨이 나올 듯하다가도 일에 대한 스트레스가 심해서 그러려니 하고 서운한 맘 위로 안쓰러운 맘을 밀어 올렸다.'' "아침에 보니까, 바닥에 흐트러져 있길래 봉투에 정리해서 가방에 넣어 놨어요. 자, 여기요."'' 희정은 화장대 위에 있던 서류가방을 내밀었다.'' "뭐, 빠진 건 없죠? 파일 하나랑 낱장으로 있는 게 다섯 장인가 되는 것 같던데……."'' 거칠게 가방을 잡아채 가는 종욱의 손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희정은 걱정스레 물었다. 하지만 그녀의 질문에 응대하지도 않고 종욱은 재빨리 가방 속을 점검하더니 이내 손목시계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미간을 좁히며 초조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 "어제, 내가 오늘은 중요한 회의 있다고 조금 일찍 깨워 달라 했잖아!"'' 퉁명스레 쥐어박는 소리가 아니었지만 오히려 한숨 섞인, 낮은 말투가 그녀를 덜컥하게 했다.'' "어, 어머! 내 정신 좀 봐! 아유, 미안해요. 너무 피곤해 보여서 생각지도 못 하고…… 조금 더 자게 두자 했었는데, 많이 늦은 거예요? 어떡해요!"'' 희정은 도리어 스스로가 다급해져서 손수건을 챙겨 주며 안절부절못했다.'' "얼른 재킷이나 줘."'' 급하게 양복 상의를 걸쳐 입고 침실 문을 나서는 남편의 등 뒤로 희정은 다시 염려스럽게 물었다.'' "아침은요? 그래도 뭐 좀 먹고 가야 하지 않아요?"'' "늦었어."'' 좀처럼 누그러질 것 같지 않은 목소리가 돌아올 뿐이었다.'' 현관에서 신발을 신으며 종욱은 주방에서 가방을 맨 채로 허겁지겁 토스트를 베어 물고 있는 아들을 향해 소리쳤다.'' "손현빈! 10초 안에 안 나오면 오늘은 혼자 버스 타고 가야 돼!"'' "아이, 아빠 잠깐만요."'' 종욱의 으름장에도 초등학교 3학년 아들 녀석은 아빠 못 지 않은 고집을 자랑하며 기어이 우유 한 컵을 다 비워 냈다. '' "일 초, 이 초……."'' 그러나 결국 종욱이 카운트를 하자 거드름선수 현빈도 어쩔 수가 없는지 얼른 한 손에 사과 하나를 챙겨 들고서 쪼르르 달려나왔다.'' 희정은 부자간의 특별한 신경전에 별안간 웃음이 올라오다가 '다녀오겠습니다.'를 웅얼거리며 아빠를 쫓아 나가는 아들을 보자 그제야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 현빈네 세 식구가 경기도에 전원 주택을 사서 이사 온 지도 벌써 3년이 되어 가고 있었다.'' 처음엔 거리상의 문제도 있고 아이 학교 문제도 걸리고 해서 망설여졌었지만 부동산 중개인을 따라 집 구경을 왔던 날, 희정은 그 아름다운 광경에 여타의 문제들을 모두 잊어버리고 말았다. 동화책에 나옴 직한 건축 양식에, 볕이 잘 드는 뜰, 주위가 온통 푸른빛으로 둘러싸인 집은 그녀가 항상 꿈꾸어 왔던 공간의 실현이었다.'' 당초 걱정했던 남편의 출 퇴근 길은 간선도로의 연결로 문제될 게 없었고 아이의 학교도 몇 분 거리에 버스가 있어 아침 등교 시엔 아빠 차를 타면 되었고 하교 때는 시간 맞춰 버스를 타면 되었다.'' 실로 모든 게 완벽한 듯 보였다.'' 희정은 정원 한 쪽에 텃밭을 만들어 손수 오이, 가지 같은 작물을 심었고 다른 한 쪽엔 꽃밭을 일구어 꽃씨를 심었다. 봄이면 잘 가꾼 꽃밭에서 꺾어 온 꽃으로 식탁을 화사하게 장식했고, 남편과 아들로 하여금 집 안으로 들어온 계절을 만끽하게 만들었다. '' 희정은 제 손 끝에서 주위의 생명이 태어나고 자란다는 것에 스스로 한껏 고무되어 있었다. 그리고 서울 단독주택에 살던 때 동네 아줌마들에게 배워서 담근 간장이며, 된장, 고추장 독들이 정원 한 귀퉁이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을 보면서 하루가 행복하게 느껴지곤 하는 터였다.'' 아들 현빈도 특유의 친화력으로 금세 동네 또래들과 어울리게 되었고 이제는 아예 엄마의 주의가 없으면 해가 저물어 어둑어둑해 질 때까지 밖에서 어울려 다니기에 바빴다. 하얗던 피부는 새까맣게 그을렸고 서울 꼬마는 어느새 시골 아이가 다 되어 있었다.'' 풍요롭고 건강한 생활, 모든 게 다 제 자리를 잡고 만족스러운 줄 알았다. 그랬는데, 어쩐지 남편만은 그녀의 평온에 동참하지 못 하고 있는 것 같았다. '' 광고 기획 일을 하던 남편 종욱은 3년 전 독립해 자신의 회사를 차린 후 메이저급 회사를 따라잡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했다. '' 이전부터 광고계의 총아로 인정받던 그였고, 독립해서 이루어 낸 성과는 업계에서 신화로 표현될 정도로 대단한 것이 되었다. 광고계의 마이더스 손, 백전백승, 불패신화, 이것이 종욱을 따라다니는 닉네임이었다. '' 앞 다투어 광고 의뢰가 밀려 들었고 부와 성공을 거머쥐었지만 종욱은 아직 뒤 돌아볼 여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회적 성취감에 도취되어 가정이 가려지고 있는 것을 그가 알기나 할까? '' 희정은 실패를 참을 수 없어 하는 남편의 성격을 이해했지만 점점 가면을 쓴 것처럼 차갑고 무표정해지는 그의 얼굴을 대하면서 가슴 속 무엇인가가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속이 점점 텅 비어 허해지는 것처럼 상실감이 커지고 있었다. 자신이 바라는 것은 큰 집도, 많은 돈도 아니었기에.'' 그저 소원하는 것이 있다면 종욱이 조금만 더 자주 웃어 주고 예전처럼 온화한 눈길을 주고 받으며 말 안 해도 서로를 느낄 수 있도록 마음을 나누는 것, 오직 그 뿐이었다. 그녀가 원했던 것은…….'' 언제부터인가, 아침 식탁을 사이에 두고 나누던 따뜻한 눈 웃음과 침묵 속 에서도 느껴지던 이해의 눈맞춤은 모르는 사이 사려져 버렸고 끊임없이 희정을 쫓던 종욱의 눈길은 아침 조간신문에 묻혀 버렸다.'' 원체 말이 없고 자신을 내 보이는 것을 꺼려하는 사람이란 걸 잘 알고 있었지만 희정은 속이 상했다.'' 이 사람, 아직도 내게 허세를 부리고 싶은 것인가? 가장 가깝고 가장 편해야할 사람이 손종욱에게 한희정 아니었던가?'' 그녀는 그가 느끼는 고민과 문제들을 함께 하고 싶었고, 사소한 불만들을 같이 이야기하며 공유하고 싶었다. 그래서 일순간 소리치고, 불평하고, 마구 해 대고 싶은 심정이 되기도 했지만 어느 날 아들 녀석이 하는 말에 이전까지의 생각을 달리하게 되었다.'' 현빈은 아침 마다 아빠 차를 타고 등교 하면서 남자 대 남자로 아빠와 도란도란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모양이었다. 아들에게 있어 아빠는 영웅이고 우상이었다. 종욱은 아들에 대한 사랑을 숨기려 들지 않았고 자신을 쏙 빼어 닮은 녀석을 못내 자랑스러워했는데 곁에서 보는 희정이 소외감을 느낄 정도로 남자들의 유대가 깊었다.'' 아무튼 녀석, 한다는 소리가 다짜고짜 자기는 아빠를 이해 한단다.'' 나물을 다듬던 희정은 괜스레 심통이 나서 남편의 무조건적인 옹호자에게 심술궂은 말을 던지고 말았다.'' "아빠가 다른 아빠들처럼 많이 못 놀아줘도 괜찮단 말야? 지난번 야구 시합 땐 꼭 오겠다고 약속하고서도 약속을 안 지켰는데?"'' 그러나 말을 끝내고 쳐다본 아들의 눈빛에 희정은 부끄럼을 느꼈다. 아이의 눈엔 원망이나 서운함이 아닌, 이해 하지 못 하는 엄마에 대한 안타까움이 서려 있었다.'' "그건 안 지킨 게 아니라 못 지킨 거였잖아. 물론 그 땐, 아빠가 꼭 시합에 와서 내가 홈런 치는 것을 봐 줬으면 했었어. 하지만 일이 생겨 못 오는 아빠도 경기장에 오지 못해 많이 슬펐을 거야. 아빠는 힘들고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이니까, 다른 아빠들처럼 항상 옆에 못 있어 준다고 해도 난 괜찮아. 그렇다고 아빠가 날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잖아?"'' 아들의 제법 의젓한 이야기에 갑자기 희정은 코가 시큰해졌다.'' '좋겠어요, 당신은……. 이렇게 든든한 지원군을 둬서.''' 희정은 눈물이 맺힐 것 같은 와중에도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아이를 꼭 껴안았다.'' "그래. 엄마가 잘 못 생각했었어. 어이구, 우리 현빈이가 엄마 보다 나은데."'' 그 후로 희정은 현실에 조금 더 느긋해 지기로 했다. 항상 긴장과 스트레스로 굳어져 있는 종욱에게 집에서 만이라도 안정을 느낄 수 있도록 되도록이면 집안 일이나 현빈의 학교 일들은 혼자서 처리하려 했고 굳이 남편의 사회생활에 토를 달거나 해서 그를 피곤하게 하지 않으려 애썼다.'' 가끔씩 자신을 거칠게 안는 종욱을 부드럽게 감싸 안았고 거의 매일 밤 녹초가 되어서 들어오는 그 에게 부담 주고 싶지 않아서 그가 원할 때를 제외하고는 다른 요구도 하지 않았다. 남편이 좀 더 느긋하고 편안해졌으면 하는, 안타까운 여심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론 서글픈 마음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언제부터인가 종욱과의 사랑에서 따뜻함과 부드러운 배려들은 모습을 감추어 버렸고, 사랑을 나눈 후 포근하게 서로를 감싸며 달콤한 여흥을 즐길 때의 일체감도 사라지고 없었다. '' 단지 욕구의 충족만이 전부인 듯한 관계.'' 희정은 언제나 진심으로 부부관계를 받아 들였지만 요즈음 남편은 거칠고 조급했다. 어떤 때는 전희도 없이 급하게 파고들어 와 희정을 놀라게 했고 그 절박함에 그녀는 묘한 불안감을 느꼈다.'' 며칠 전만 해도 밤 늦게 들어온 종욱은 기다리다 잠든 희정에게 급하게 자신을 묻어왔다. 잠이 덜 깬 그녀는 갑작스런 침입에 놀라고 움츠러들었지만 벼랑 끝에 선 듯한 남편의 눈빛을 대한 순간 참을 수 없는 연민이 밀려들었다. 결국 그를 끌어안을 수 밖에 없었다. '' 종욱은 급하게 숨을 몰아 쉬며 그녀 안에서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다가 기대하지 않던 아내의 호응을 느끼자 일순 몸을 움찔했다. 그리고 이내 더욱 깊숙이, 그녀의 몸 속으로 자신을 밀어 넣었다. 침실엔 두 사람의 거친 숨소리만이 가득했고, 평소 관계에 소극적이던 희정도 그 순간엔 적극적으로 종욱을 몰아가고 있었다.'' 그녀는 몸을 굴려 여전히 결합해 있던 남편의 위에 걸터앉았다. 하지만 자신이 상위가 된 체위로 인해 발기한 남성이 여성 끝까지 밀려와 닿자 거북한 느낌이 들어 그녀는 잠시 그의 가슴을 짚은 채 숨을 멈췄다. 그러나 금세 마주본 눈동자 속에서 섬광이 일자 두 사람은 다시 상대를 찾기 시작했다. 빠르고 격렬하게, 지치지 않는 몸짓이 계속되고 있었다.'' 희정은 종욱의 가슴으로 입술을 미끄러뜨리면서 동시에 한 손으로는 그의 가슴을 지나 복부 아래쪽에서 완전하게 맞물려 있는, 열정의 중심을 조심스럽게 어루만졌다. 손의 움직임에 따라 종욱의 가슴이 급하게 오르내렸고 희정은 제 몸 안에 있는 그의 남성이 점점 더 묵직해져 뜨겁고 빈틈없게 여성을 채워 오는 것을 느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된 종욱은 희정을 자신의 아래쪽에 돌려 뉘었고, 양손으로는 그녀의 가슴을 그러쥐고 마사지하듯 힘있게 자극했다. 가슴을 만져 주면 아내가 더 쉽게 달아오른다는 걸 알기 때문이라 하기엔 아플 만큼 거친 애무였다. 손바닥 안의 유두가 납작하게 눌렸고, 쥐었다 놓았다 하는 움직임은 격정에 찬 소유욕처럼 보였다. 이윽고 손동작에 맞춰 그녀의 자궁 문까지 자신을 밀어 넣은 그는 마지막엔 제 모든 것을 쏟아 부으며 절정에 몸을 떨었다.'' 그는 거친 신음을 내 지르며 희정의 가슴 위로 쓰러졌다.'' 두 사람의 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었고 아직 고르지 않은 숨소리와 맞닿은 심장이 요동치는 소리에 젖은 육체마저 진동할 정도였다. '' 얼마나 지났을까, 그녀의 몸 위에 엎드린 채 있던 종욱은 가만히 상체를 일으켰다. 남자의 등에 가려 있던 여자의 나신 위로 스탠드 불빛이 쏟아졌고 하얀 가슴에 붉은 자국이 드러나자 종욱은 욕설을 삼켰다. 그의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 젠장, 길거리 여자처럼 아내를 취하다니!'' 평소 유난히 민감한 피부의 희정이기에 그녀를 안기가 항상 조심스럽던 종욱이었다. 그런데, 불량배가 거리의 여자를 소유하듯 아내를 품은 것이다. '' '제기랄, 염병할, 개자식! 이건 아닌데……. 이래서는 안 되잖아!''' 급속도로 이는 죄책감에 종욱은 가슴이 아팠다. 더욱이 자신을 바라보며 '아무렇지도 않아요, 괜찮아요.'하는 것 같은 그녀의 눈빛을 대하자 그는 애처로운 마음에도 짜증이 솟아나 얼른 고개를 숙였다. 지체없이 부당한 제 감정을 꾸짖고 아내를 위로해야 했다.'' 종욱은 손자국이 난 희정의 가슴에 입술을 미끄러뜨렸다. 왼손으론 그녀의 오른쪽 가슴을 부드럽게 감싸 쥐고 입술로는 사랑의 행위로 더욱 도드라진 유두를 머금은 채 혀로 찰싹거리며 조심스럽게 입 안에서 굴렸다. 따뜻한 혀에 말려 점점 커지는 핑크 빛 정점, 다시 그녀의 흥분이 느껴졌지만 종욱은 개의치 않고 축축해진 유두를 쪽 소리가 나게 입 밖으로 내밀어 그 곳에 눈물이 날 만큼 따뜻한 키스를 남겼다.'' 희정은 왼쪽 가슴에도 똑같은 숭배를 하는 남편의 모습을 보면서 또다시 숨이 가빠오기 시작하다가 불현듯 목이 메였다.'' 남자의 지친 맘을 위로하는 눈물 젖은 미소가 얼굴에서 은은하게 퍼졌고, 그녀는 고개를 들어 종욱의 입술에 살짝 제 입술을 겹쳤다. 그리고 더 깊은 키스를 위해 그의 목에 팔을 둘렀는데 종욱은 천천히 팔을 풀게 하더니 그녀의 이마에 입술을 누르며 말했다.'' "안 돼. 당신을 너무 거칠게 대한 것 같아. 아마…… 아침에 많이 힘들 거야. 미안해, 내가 그만……. 조금 더 자." '' 잠긴 목소리로 띄엄띄엄 말하던 그가 곧 바닥에 떨어져 있던 이불을 들어 그녀의 나신 위로 가만히 덮어 주었다. 조용하고 온유한 손길이 지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종욱은 아내의 얼굴에 흘러내린 머리카락 몇 올을 손으로 넘겨주며 한동안 눈길을 맞추는 듯하다가 이내 무겁게 한숨을 내쉬고 돌아섰다.'' 희정은 곁에 누울 줄 알았던 남편이 욕의를 걸치며 멀어지자 사랑의 열정으로 충만하던 가슴에 바람이 이는 기분이 들었다. 혼란으로 눈동자가 흔들렸고, 당혹감에 젖은 말이 더듬더듬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