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위험한 휴가

뻐근한 어깨를 손바닥으로 툭툭 두드리며 좌우로 목을 휘둘렀다. 뻑뻑거리는 뼈 부딪치는 소리가 섬뜩하게 났다. 파김치가 된 진후는 몸속에 있던 에너지를 바닥까지 싹싹 긁어 쓴 기분에 퍼스트 클래스의 커다란 비행기 좌석에 쓰레기 더미처럼 지친 몸을 구겨 넣었다. 기장의 안내 방송이 뭐라고 나왔지만 귓가에서 앵앵대는 모기 소리처럼 짜증만 일으켰다. 안전벨트를 매는 것도 귀찮았다. 이곳까지 어떻게 왔는지도 제대로 기억나지 않을 정도였다. 그저 태워다 준 차 안에서부터 꾸벅꾸벅 졸았다는 것만 생각났다. 아마 발권을 하고 기내로 걸어 들어오면서도 계속 졸았을지도 모른다. 진짜로 이제야 물 먹은 솜이 어떤 기분인지 알 것 같았다. 한마디로 엿 같다는 게 진후의 소감이다.'아! 빌어먹을! 내가 다시 한 번 그따위 일에 뛰어들면 성을 갈아 버리고 만다!'간신히 안전벨트를 맨 진후는 끝났다는 안도감에 좌석 깊숙이 등을 기대며 눈을 감았다. 유난히 힘들었던 이번 일이 생각나자 반듯한 이마 위로 보기 싫은 선이 그어졌다. 누군가의 꼬임에 홀까닥 넘어가 버린 내 탓이지, 누굴 탓하랴! 그래도 끝이다. 한동안은 치여 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진후는 맥 빠진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얼마만의 휴가인지……. 휴가를 보내는 동안은 이쪽으로는 아예 고개도 돌리지 말아야지. 숨도 쉬지 말고, 침도 뱉지 말자. 작업실에 틀어박혀서 그림만 그려야지. 벌써부터 눅진한 물감 냄새가 그녀의 코를 자극하는 듯했다.'천천히 돌아가기 시작하는 비행기 바퀴의 진동이 커다란 동체를 흔들었다. 조금씩 활주로를 나아가기 시작하는 거대한 동체. 인간이 만든 강철의 날개가 하늘을 향해 천천히 날아올랐다. 작은 창 사이로 반짝이는 공항 청사의 건물이 서서히 주저앉더니 그 대신 흰 구름이 떠 있는 푸른 하늘이 그 자리를 채웠다. 가로막고 있는 높다란 빌딩도, 민숭민숭한 산도 없는, 끝없이 펼쳐져 있는 탁 트인 푸른 공간. 그 하늘을 창문에 달린 덮개를 내려 매정하게 막아 버린 진후는 좌석을 뒤로 젖혔다. 그리고 어찌어찌 여기까지 간신히 손에 쥐고 올 수 있었던 모자로 얼굴을 덮었다. 의도한 대로 세상이 깜깜해지자 그녀는 마음 놓고 눈을 감았다. 이곳에서는 단잠을 깨울 귀찮은 인간들이 하나도 없을 테니까.'커피와 오렌지주스 등이 담긴 트레이를 끌고 좌석 사이를 오가던 스튜어디스들은 모두 자고 있는 진후 앞에서 한 번씩 멈칫거렸다. 저도 모르게 힐끔거리게 되는 눈길을 그녀들도 어쩔 수 없었던 것. 그만큼 주변 손님들과는 섞이지 않는 튀는 옷차림이었다. 퍼스트 클래스를 이용하는 손님들 대부분은 비싼 티켓 가격을 지불할 능력이 되는 일명 상류층 부류였다. 그만큼 그들의 차림새는 노트북을 꺼내 업무를 확인하는 비즈니스맨 타입이거나, 은퇴해 노년의 여유를 즐기는 편안하고 넉넉한 분위기의 노부부들로 확연하게 구분되었다. 그러나 지금 모자로 얼굴을 가린 채 정신없이 자고 있는 여자는 아무리 봐도 퍼스트 클래스에 걸맞은 손님이 아닌 듯해 확인 차 지나가면서 몰래 훔쳐보는 터였다. 그럼에도 막상 얼굴조차 확인할 수 없는 진후의 모습을 보면 이상하게도 저절로 납득하고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좌석 위로 흘러내린 제각각 다른 현란한 머리카락 색들. 브리지를 넣은 듯 검은 머리카락들 사이로 진빨강, 노랑, 밝은 주황, 진초록, 파랑, 군청, 그리고 마지막 보라까지. 각각 색이 다른 가닥들이 서로 얽혀 좌석 위에 꽈배기처럼 제멋대로 꼬여 있었다. 게다가 다리 선이 그대로 드러날 정도로 딱 달라붙은 갈색 가죽 바지에, 발목을 교차시킨 채 앞에 놓여 있는 작은 가방 위에 떡 올려 있는 10센티미터는 되어 보이는 굽 높은 낡은 부츠. 바지만큼 몸에 붙는 흰색 민소매 티와 아무렇게나 내팽개친 듯한 크림색 니트가 무릎 위에 뭉쳐져 있었다.

미리보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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