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현의 어깨를 안고 비행기에 올랐다. 스튜어디스의 상냥한 인사에 미소로 화답하며 입구에 배치된 신문을 집어 들고 통로로 들어갔다. 막 자리를 잡고 앉는 서현이 완전히 내 여자가 되었다는 것에 가슴이 벅찼다.'태현이 열려진 선반에 작은 캐리어를 밀어 넣으며 자리를 준비하는 동안 서현은 안전벨트를 매고 작은 창 너머의 밖을 쳐다보았다. 오늘 비행기 좌석은 만석이었다. '신혼부부로 보이는 사람들과 가족단위의 여행객들을 둘러보다 태현은 비행기에 오르면서 가지고 온 신문을 무심코 펼쳤다.'“이게 뭐야?”'“왜요?”'별안간 들려온 태현의 음성에 그녀가 돌아보았다.'헤드라인으로 크게 쓰인 글씨와 밑에 나온 사진은 분명 서현의 아버지인 주 대법원장의 모습이었다. ''<사법부를 움직이는 손이 있다?>''헤드라인만 보면 사법부가 누군가의 조종에 의해 움직이는 뉘앙스가 강하게 풍겼다. '태현은 서현에게 기사 내용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주원호 대법원장의 사진, 그리고 그 밑에 철저히 인터뷰 형식을 빌려 쓴 기사를 살피던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ㅇ판사는 지금 가장 육중한 벽 앞에서 무기력감을 느끼고 있다. 주변에서 연수원 동기들의 인사 소식이 심심찮게 들려오기 때문이다. 누구누구는 서울에서 이른바 요직이라는 자리로 갔다더라 하는 얘기 등이다. 그는 법원 내에서 더 이상 큰 꿈을 펼칠 자신이 없어졌다. '사법고시 성적과 사법연수원 성적을 합친 그의 ‘임관 성적’은 법원 내 동기생들 가운데 중상위권에 속했다. 학교는 지방의 비명문대 출신이다. 그의 첫 부임지 역시 한 지방법원이었다. 그는 “결국, 이렇게 지방으로만 떠돌다가 적당한 시기에 변호사 개업이나 알아봐야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차라리 검찰로 갈 것을 그랬다는 생각도 든다. 내가 너무 야망이 강한 건가”라고 말한다. ㅇ판사가 처한 벽은 오늘날 우리 사법부의 치유되지 않는 고질병이다. ''판사 출신의 대한변호사협회장은 얼마 전 <기자저널>과의 인터뷰에서 “현재 사법부의 가장 큰 문제점은 지나치게 관료주의적이라는 점이다”라고 비판했다. 사법부의 관료주의적 문화가 바로 사법부 폐쇄성의 주된 원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끌어주고 밀어주는 인맥의 형성, 특정 출신이 특정 핵심 보직을 대물림하는 문화, 우수한 인재를 선점하여 스카우트해가는 특정 사조직의 배타성, 그리고 주요 핵심 보직을 가급적 친정부적인 인사들로 채우고 싶어 하는 정권의 속성. 이 모든 복마전적 요소가 법원에도 그대로 존재하고 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전·현직 판사들에게 공통적으로 “법원의 ‘이너서클’은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대부분은 “법원의 개인주의적 성향의 특성상 그런 경향은 미약하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검찰이나 다른 조직에 비해 미약하다는 것이지, 전혀 없다고 단언하지도 못한다. “분명히 존재한다.”라는 대답도 제법 있었다. 결국은 ‘자리’가 문제였다. 법원은 철저히 자리를 중심으로 이너서클이 형성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