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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내가 어떻게 임신을 하지…… 가 아니구나.”'임신이라는 진단을 받자 그녀는 의사가 다른 환자의 차트를 잘못 들고 왔거나 검사가 들린 거라 생각했다. 그 생각도 잠시, 그녀는 한 순간의 욕망에 멀어 오전도라는 남자와 기가 막힌 탱고를 췄던 기억이 뇌리에 스쳤다. 검찰청 복도에서 오전도를 스쳐 지나갈 때마다 느꼈던 예기치 않던 불꽃은 2000년 밀레니엄이라 떠들썩했던 그날 밤, 카운트 세기 시작하던 바로 그 순간 점화되어 그녀의 사무실로 이어지고 말았다. 그가 그녀의 모든 뇌의 활동을 이성적으로 할 수 없게끔 전자파를 마구 뿌려댄 게 틀림없다.'‘섹시? 오, 그래!’'그날 밤 자신이 보았던 그의 모습은 한 마디로 숨이 막힐 만큼 매력적이었다. 단호한 얼굴 윤곽, 따뜻한 눈동자, 그녀를 동요시키는 입매, 갑자기 그가 몸을 움직여 압박해 왔고 그녀는 직감적으로 그가 키스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거부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복도에서 기습적으로 당한 키스에 그녀는 무릎이 휘청거릴 정도로 현기증이 일었으며 가슴이 마구 뛰었다.'‘오! 맙소사!’'그는 멈추지 않았다. 그의 혀는 그녀의 입술에 마법이라도 부리는 것처럼 요리조리 매끄럽게 장악하였다. 2000년 자정을 조금 지날 무렵 이미 그들은 소파 위에서 진한 포옹을 나누고 있었다. 두 사람의 묘한 호흡은 주빈에게 일생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짜릿함을 안겨주었고, 그에 따른 가벼운 흥분에 몸이 떨려왔다. 몽롱한 기운을 내뿜는 그의 눈빛은 동시에 또 다른 뭔가를 품고 있었다. 그녀를 송두리째 흔들어 놓는 무언가를……. '단 한 번만이라도……. 오늘 밤만이라도 주빈은 여자가 되어 자유롭게 날아 보고 싶었다. 오랫동안 기다린 태양을 향해 고개를 빳빳이 세우는 해바라기처럼 주빈은 결국 그 날 모든 것을 던졌다. 열정적으로 가슴을 움켜쥐며 한 입 가득 빨아들이는 그의 입술에 그녀는 숨을 들이마시기만 할 뿐 내쉬지는 못하고 눈을 감아버렸다. 생전 처음 골문을 지키는 수문장이 너무 강하게 몰아치는 단 한 방의 센터링에 자살골을 주고 말았다. 그가 마치 자신을 여자로 만들어 주기를 원한 듯, 그를 받아들이기 위해 상시 대기 중이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말이다.'‘이런 짓을 한 걸 알면, 우리 엄마 등짝 얻어터지는 것을 지나 아마 날 칼로 찔러 죽으시려고 할 걸?’'하지만 그녀는 은밀한 수풀을 헤치고 오는 몸에 이마를 기댄 채 그의 움직임에 맞춰 신음을 내질렀다.'‘아름답게 죽는다는 게 이런 건가?’'그녀는 어지러움을 느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여정을 떠났다. '그 신비롭고 열광적인 대가는 곧이어 온 몸을 휘젓는 고통으로 이어졌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달콤하면서도 격렬한 위험에 빠졌다.'“후! 이 사실을 어떻게 말해야 하지?”''<낙태란 자연 분만기에 앞서서 태아를 인위적으로 모체 외에 배출시키거나, 모체 내에서 살해하는 죄로써 형법 269조 1항에 의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그녀는 죄를 지은 사람을 구형하는 검사였지만 이제는 배심원의 판결만을 기다리는 피고가 된 심정이었다. 그런 난처한 경험은 처음이었다. 자신이 남자와 사랑을 나눈다는 건 이런 구질구질한 결말이 아닌, 어느 정도의 경계선에서 끝날 줄 알았다.'‘오! 세상의 여자들이여! 당신들은 이럴 때 어떻게 합니까?’'이 각별한 몸짓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주빈은 생각조차 않은 채 육체가 반응하는 대로 따라버린 것이다. '남성 중심의 일터에서 나름대로 생존해 나가는 방식에 익숙해지기까지 꽤나 시일이 걸렸다. 가끔 같이 근무하는 동료검사들이 성차별적 발언을 할 때면 그녀는 어금니를 깨물었어야 했다. 특히 이민수 검사는 눈에 가시처럼 느껴졌다. 그의 강인한 성격은 오만하면서도 거칠었다. 그가 여자를 유혹적인 시선으로 볼 때면 키스하고 싶은 게 아니라 가느다란 목을 물고 싶어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을 정도였다. 입가에 띤 그 냉혹한 미소에 송곳니만 갖다 넣으면 영락 드라큘라나 진배없었다.'“현 검사! 당신 어떤 이성에게도 관심 없는 불감증에 걸린 여자 같아 보여요. 일에만 너무 열중하지 말고 우리 데이트 한 번 어때요?”'“지금 그 말 사과하지 않으면 상부에 보고하겠어요!”'“뭐 이딴 걸 가지고 그래요?”'“난 불감증이 아니에요. 나에게 남자라는 건 선택사항일 뿐, 필수 사항은 아니라고요!”'“내 참 더러워서…….”'“조심하세요.”'대부분의 남자 검사들은 항상 이런 식이었다. 하지만 오전도는 달랐다. 적어도 그녀의 눈에는 제대로 된 남자로 보였다. 그의 옆에 있으면 ‘여자라는 사실을 인정하라’며 심장이 알아서 두근거렸고, 아주 사소한 행동까지도 조심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건이 벌어졌다. 그녀가 지하 주차장에 스포티지를 주차하기 위해 턴을 돌때였다. 조금 삐죽이 주차되어 있던 차 때문에 커브를 크게 돌다 어이없게도 옆에 있던 코란도의 범퍼를 박는 실수를 하고 말았다. 그리고 사고의 여파로 순간 그녀의 머리가 흔들리며 핸들과 부딪쳤다. 충돌한 오른 쪽 눈두덩이 순식간에 벌겋게 부어올랐다. 억세게 운이 없는 하루의 시작이었다.'“아야!”'그녀가 작은 비명을 내지르는 사이 차 주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전도 검사였다. 그녀는 순간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라면 화를 내지 않을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도대체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따뜻함이 느껴졌다. 그녀는 차 유리창을 내리고 자신의 차로 걸어오는 그에게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오 검사였어요? 미안해요! 차는 일단 수리…….”'“그게 문제예요, 지금? 얼굴에 상처를 입은 것 같은데…….”'“괜찮아요.”'그녀가 오른 쪽 눈 부위를 만지작거리며 괜찮다는 제스처를 보냈지만 그는 단호했다.'“잠깐만 기다려요.”'그녀는 차 앞문에서 키를 꺼내는 그의 뒷모습을 망연히 바라보았다. 그가 방금 보인 행동이 그녀에게는 왠지 거부 반응을 일으켰다. 이른 바 남자들의 속성……. 과잉 친절에 따른 음흉한 대가를 그녀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콧방귀를 뀌고 그를 쳐다보며 냉랭하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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