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이 어때?”'가만히 쌍둥이를 지켜보고 있던 움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질문이었다.'“어떨 것 같아?”'되묻는 그리는 입술 끝이 올라가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큰 미소는 아니었으나 움은 5분 먼저 태어난 쌍둥이가 큰 기쁨을 느끼고 있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움이 알고 싶은 건 정확한 기분이었다.'“모든 것을 가진 것 같아? 아니면 세상이 발아래에 있는 것 같아?”'그리는 고개를 저었고 움은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혹시…… 기절하고 싶은 거야?”'“기절? 내가?”'그리는 코웃음을 쳤고, 움은 예상했던 반응에 살짝 설명을 덧붙였다.'“결혼식 날인데 아무리 너라도 오늘쯤은 긴장하는 게 정상이야.”'“결혼식 날이든 무슨 날이든 간에, 그럴 일 없어.”'“좋아, 좋아. 그러면 긴장이나 기절은 뺄게. 그럼 대체 뭐야? 그냥, 기쁘다?”'“물론 기쁘긴 해. 하지만…….”'“하지만?”'움은 재촉했고, 그리는 손에 들고 있는 부케를 옆으로 느슨하게 흔들며 말해주었다.'“올바른 일 같아.”'움은 이번에는 조용히 경청했다.'“만약 세상 모든 일이 그르다고 해도, 이 결혼은 유일하게 옳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딱 맞는…… 무언가랄까.” '깊은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그리는 살짝 어깨를 위로 올렸다가 내렸다. 새하얀 웨딩드레스는 쇄골 아래로 펼쳐지기에 맨어깨가 그대로 드러나 있었는데, 몸에 딱 맞게 입혀진 드레스가 흐트러진 건 아니었으나 움은 손을 뻗어 드레스를 살짝 위아래로 쓸었다.'쌍둥이의 결혼. '그리가 그토록 오랫동안 사랑하던 사람과 드디어 결혼하게 됐다는 사실이 움은 그저 기쁠 뿐이었다. 하지만 결혼식 당일이 되자, 갑자기 심장 한 구석이 떨려왔다. 그동안 생각하지 못했던 감정 때문에.'“부러워?”'언제나 그렇듯이 그리는 움의 마음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는 질문을 했고, 움은 그리가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초능력이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예전에는 나도 그리의 생각을 훤히 볼 수 있었는데…….'하지만 1년 전, 그리가 곧 남편이 될 하늘과 마음이 통한 뒤부터 움은 쌍둥이의 감정을 잘 읽을 수 없게 되었다. '움은 아쉬움의 한숨을 내쉬며 그리의 질문에 답했다.'“응, 부러워.”'그토록 사랑하는 남자에게 같은 마음을 돌려받는다는 게, 영원히 함께 걸어갈 동반자를 만났다는 게, 움은 부럽고 부러웠다.'“오빠를 좋아하기 전에는 난 네가 부러웠어.”'그리는 웨딩드레스를 곱게 차려입고 신부화장을 끝마친 신부답지 않게 씩 하고 터프하게 웃었다.'“열정을 불사를 무언가가 있으니까. 모모 언니에겐 회사가 있고 네겐 바이올린이 있잖아. 오빠에게 반하기 전에는 내겐 아무 것도 없었어. 잘 알지?”'움은 고개를 끄덕였다. 열네 살 때, 하늘에게 첫눈에 반하기 전에는 진그리는 말 그대로 지루한 삶을 살았었다. 그에 반해 그리보다 5분 늦게 태어난 움에겐 다섯 살 때부터 바이올린이 있었다.'“바이올린을 택한 걸 후회하지 않아.”'운명이었다. 당시 매우 어린 나이였음에도 움은 바이올린을 처음 만났던 날을 잊지 못했다. 상류층이라면 클래식 공연에 한 달에 한 번이라도 꼭 가야한다고 주장하는 아빠는 그날, 처음으로 쌍둥이 딸을 데리고 세종문화회관으로 향했었다. 그리는 공연 내내 침을 흘리며 쿨쿨 잠들었으나 움은 바이올린에 홀리고 말았다.'맨 앞자리에서 움은 연주자의 손가락과 바이올린의 현만 바라보았다. 그리고 공연이 끝나자마자 아빠에게 조르기 시작했다. 바이올린을 사달라고.'겨우 다섯 살에 불과했으나 요구가 많은 그리와는 달리, 움은 언제나 조용하고 순한 아이였었다. 그런 딸이 처음으로 소원하는 것을 아빠는 즉시 들어주었다. 그날 밤, 움의 앞에는 10분의 1 크기의 바이올린 하나가 놓였다.'움은 바이올린을 안았다. 그리고 나서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활을 들었고, 현을 그어 내리며 연습을 시작했다. 한 시간 전에 들은 바로 그 곡을.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딸을 깨우러온 아빠 앞에서 움은 어젯밤 공연의 곡을 연주했다. 손가락 끝에서 피가 배어나왔고 퉁퉁 부은 상태였으나 세계 최고 중에 하나라고 일컬어지는 연주자와 엇비슷할 정도까지 연주해내자 당장 아빠는 최고의 선생을 움에게 붙여주었다. '17년이 흘렀고 스물 두 살인 현재, 진움은 세계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 가운데 하나였다. 타고난 재능에 엄청난 연습량까지 합쳐져 많은 이들의 찬사를 받고 있는 존재.'움은 자신의 운명에 만족했다. 바이올린을 사랑하고, 사랑했다. 하지만.'“외로워.”'나도 날 포근하게 안아주는 남자가 있으면 좋겠어. 날 뜨겁게 사랑해주는 남자가 있으면 좋겠어.'움은 소리 내어 말하지 않았으나 이번에도 그리는 알아들었다. 그리가 잠시 침묵을 지켰다가 막 입을 열었을 때였다. 신부대기실이 열리더니 탄성이 터져 나왔다.'“잘 어울리는구나.”'아빠였다. 성질대마왕이라는 별명이 있는, 세계적인 대기업 자운그룹의 사장 이한. 남들에겐 무시무시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으나 쌍둥이에겐 마냥 마음 넓은 아빠일 뿐이었다.'“그리야.”'“네,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