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 다녀, 말아? 이참에 그냥 병가 신청할까? 아냐. 그냥 입시 학원으로 빠지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은데? 못 벌어도 한 달에 400이라잖아?󰡑 '강민수 선생은 어제 했던 갈등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재현했다. 하지만 자신이 그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다는 것도 깨닫지 못한 채 혼자만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정확히 3분 20초 후, 강민수 선생은 자신이 어제와는 다른 결단을 내리기라도 한 양 자신만만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깟 고삐리 하나 때문에 초중고 9년, 사범대 4년을 투자해 얻은 교사 자리를 걷어찰 순 없지.’'1년! 말이 1년이지 봄, 여름, 겨울방학을 빼면 6개월도 남지 않았다. 어떻게든 6개월만 버텨주면 문제의 김찬욱과도 끝인 것이다. '신학기 시작되고 석 달이 지난 지금, 담배 개비 수가 세 배로 늘고 주량도 소주 한 병에서 네 병으로 증가세를 보이는 추세였지만 ‘6개월만 견뎌!’란 목소리가 그를 독려했다. 누구는 ‘아직도 6개월이나 남았어?’라고 울상을 지을 수 있을지도 모르나 그의 두 어깨에 동생들의 미래가 달렸다고 생각하면 못 참을 것도 없는 강민수 선생이었다. ‘아직도 6개월’이란 말은 결국 이제 ‘겨우 6개월 남았다’란 말로 자연스럽게 탈바꿈했다. '강민수는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있던 담배를 재떨이에 꾹꾹 누르며 무표정하게 서 있는 제자에게 시선을 돌렸다. '“할 말은 많지만 그만 가봐.”'법조계 출신의 잘나가는 국회의원 아버지를 둔 김찬욱이 설핏 입술 끝을 말아 올린다. 필시 다른 교사들처럼 부모의 배경에 손을 든 담임을 경멸하고 있는 게 분명하리라. 강민수 선생은 제자의 도발에 걸려들지 말자 다짐을 하면서도 둘째 동생뻘밖에 되지 않는 놈이 비아냥거림을 감추지 않자 감정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아차, 했지만 그는 이미 풋내기처럼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그래, 이 새끼야. 너 진짜 재수 없고, 너 같은 녀석의 담탱이 된 거 진짜 똥 밟은 기분이지만 너 때문에 선생질 때려치울 생각은 추호도 없다. 솔직히 하루에도 수백 번 이까짓 것 때려치우고 싶다가도 딸린 식구 생각 하면 그럴 용기가 안 난다 이거야. 그러니 너도 평생 내 얼굴 볼 각오 아니면 알아서 선 긋고 행동해. 너 때문에 잘리거나 하면 평생 쫓아다니며 원망할 거라구. 솔직히 까놓고 얘기해서 너한테 무리한 걸 요구하는 것도 아니잖아. 무작정 죽어지내라는 게 아니라 나 잘리지만 않게 해달라는 거야.”'“그게 선생이란 사람이 제자에게 할 소립니까?” '“제자도 제자 나름이지, 네가 언제 나 선생 대접 해준 적 있냐?”'점점 험악한 소리가 튀어나왔지만 오히려 잘됐다는 생각이 든다. '이쪽의 약점을 훤히 꿰차고 있는데 그게 내 약점이 아니라고 잡아떼는 것도 여간한 꼴불견이 아니다. 그것은 마치 내 목 잘릴 것이 두려워 이러는 게 아니라 네 장래가 걱정되어 이렇게 난리를 치고 있다는 핑계만큼이나 구역질나는 위선이었다. '직접이든 간접이든 기성세대의 치부를 속속들이 꿰차고 있는 놈이 김찬욱이다. 감춘다고 해서 감춰질 수 있는 게 아니라면 차라리 속 시원하게 까발리고, 양해(?)를 구하는 게 낫다. '한데 잠자코 듣기만 하던 김찬욱이 문득 고개를 들더니 두 눈에 힘을 준다. '‘갑자기 왜 저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