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사람들은 나를 나비(娜婢)라 칭했다.''어려서부터 나는 비가 오는 날을 지독히도 싫어했다. 밖에 나가 뛰어 놀지 못할뿐더러 마냥 방 안에서 콕 박혀서는 자수를 놓는 일이나 서책을 들추는 일이 그땐 어찌도 그리 싫었는지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참으로 우스운 일이다.'부족한 것 없던 나의 생활들이 깨어진 것 또한 새벽 새에 내리던 빗방울이 굵은 빗줄기가 되어 사정없이 땅으로 내려치던 날이었기에 아마 나는 비를 끔찍하게도 싫어하는지 모른다.'내가 살던 고을은 나라님이 사시는 경성과 가깝진 않았지만, 서역에서 들어오는 상인들의 발걸음과 외교 문제로 인해 나라님을 뵈러 가는 타국 사자들의 왕래가 잦은 곳이라 이리저리 진귀한 물품들을 볼 수 있는, 호기가 유난히 남달랐던 내겐 제격인 곳이었다.'제법 우리 집 소유의 땅도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의원이셨던 아버지는 실력이 꾀나 용하다 소문이 자자해 먼 곳에서 진맥을 받으러 오는 이들 또한 적지 않았기에 돈이 모이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언제나 일손이 부족해 아버지와 어머니께선 내게 약재를 가져다 나르는 일을 시키곤 하셨지만, 늘 그 일은 집안일을 도와주던 선우댁의 몫이었다.'현모양처로 소문난 우리 어머니 아버지, 나는 그들 사이에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보석이었다.'적어도 내 고향 선해(選海)국과 홍월(弘越)국의 전쟁이 있기 전까지는 말이다.'나는 그때에 내 나라의 병사들이 힘을 내어 이기길 기도하고 기도해야했다. 그랬더라면 지금의 내 처지가 조금은 달라져 있을지 모르니 말이다. 아득하게도 멀어지는 당산나무를 향해 나는 중얼거렸다.'내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우리 집을 부탁한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