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륵, 찰칵.'그건 분명 셔터를 누르는 소리였다. 윤희에겐 아주 익숙한, 그래서 스쳐갈 수 없게끔 만드는 그런 소리. 여긴 갓 봉분을 세워 올린 묘 앞이 아닌가. 셔터 소리가 나기에는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장소다.'눈물도 말라 버린 해쓱한 얼굴로 윤희는 귀를 붙든 그 소리를 따라 몸을 돌렸다. 곁에서 부축하듯 윤희의 팔을 잡고 있던 이모도 함께 소리가 나는 쪽으로 돌아섰다.'윤희의 시선이 가 닿은 곳에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카메라를 들었고, 그야말로 마술이라도 부린 듯 갑자기 눈앞에 나타나 있었다. 무덤 뒤편의 앙상한 겨울 숲에 숨어 있었다고 보기엔 남자의 키가 산뜻하게 컸다.'윤희와 정면으로 시선이 마주치자 남자가 약간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마치 잘못을 저지르다 들킨 소년 같았다.'“지금, 사진을 찍은 건가요?”'윤희가 좀 도전적으로 물었으므로 남자의 입술에 감돌던 미소가 사라졌다. 남자는 윤희 가까이로 걸어왔다. 윤희는 남자가 입고 있는 오렌지색 파카마저도 못마땅하게 느껴졌다. 자신이 입은 창백하도록 하얀 한복과는 대조적인 화사한 빛깔이어서 그랬을 것이다.'“미안합니다.”'남자는 사과부터 했다. 바로 앞에서 본 남자의 얼굴은 선량해 보였다. 아니, 투명해 보였다. 빛이 모두 여과되어 가라앉고 오직 한 가지 빛깔만 남아 있는 것처럼. 햇빛.'“혹시, 나를 찍은 건 아니겠죠?”'사과를 한 남자의 언행으로 봐선 그럴 가능성이 높았지만 윤희는 확인하듯 물었다. 묻는 윤희 입술에 미소 같은 건 한 자락도 스며 있지 않았다.'“네. 아니…… 실은 찍었습니다.”'“왜요?”'“그러고 싶어서요.”'남자의 목소리에서 여유가 묻어났다. 불쾌했지만 화를 낼 기운도 없었다. 얼마 전에 엄마를 언 땅에 묻고 돌아서는 딸이었으니. 윤희는 손을 펴 내밀었다.'“이리 주세요.”'“뭘 말인가요? 이거요?”'남자가 목에 건 카메라를 들어 올리며 장난스럽게 반문했다.'“그 안에 든 필름 말이에요.”'“그건 곤란한데요.”'“어째서요? 허락도 없이 남의 사진을 찍어 놓고 그걸 그대로 가져가겠다니, 황당하고 무례한 사람이군요.”'“딱 한 장 찍었어요.”'“한 장이든 두 장이든 싫으니까 달라구요. 초상권이라는 건 아시죠? 보아하니 사진으로 먹고 사는 분인 것 같은데.”'“어? 눈썰미가 제법이네요?”'시종일관 장난기를 깔고 있는 남자에게 윤희는 점점 더 마음이 상했다. 보면 모를까? 지금이 어떤 상황인가를.'“지금……그쪽하고 농담하고 있을 기분 아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