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의 이른 아침, 제법 덩치가 있는 누런 개가 어슬렁거리는 한옥 마당 옆, 억새풀이 제법 우거진 밭에선 제각기 얼굴에 검댕 칠을 하고 엎드려 있는 일곱 살 가량의 남자 아이 네 명과 네 살 가량의 어린 여자 아이가 한 명 보였다. 쌀쌀한 바람에 갈대들이 요란스럽게 소리를 내며 흔들어댔지만 그들은 결의에 찬 표정이었다. '맨 처음 입을 연 것은 그 중에 한 명의 남자 아이, 민욱이었다. 제법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하얀 얼굴에 귀티가 나는, 나이에 비해 키가 큰 편이었다. 군복 바지에 짙은 초록색 재킷을 걸친 민욱은 한 손에 장난감 칼을 꺼내 들고 하늘을 향해 올렸다. '“남자라면 절대로 피하면 안 돼.” '민욱에 연이어 쌍둥이 중 형인 또릿또릿하게 생기고 피부가 까무잡잡한 일성이 말했다. '“당연하지! 감히 내 여동생 환희를 깨물다니!” '이를 꽉 문 일성의 행동은 일곱 살 치고 꽤 엄숙해보였고 쌍둥이 동생 이성은 미소를 지으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우리 다섯이 힘을 뭉치면 충분히 저 놈을 혼내 줄 수 있을 거야. 감히 과자를 주는 환희의 팔을 깨물다니!” '“오빠!” '환희는 둘째 오빠 이성이 에게 팔의 상처를 보며 울상을 지었다. 읍내에 있는 병원에 가서 아픈 주사를 맞고 똥개의 털을 잘라 태워 팔에 붙인 뒤에야 통증이 멎었다. '“아직도 아파!” '“아직도 아파?” '환희의 슬픈 표정에 환희의 팔을 잡고 호호 불어주던 또 다른 아이 성준은 저 누런 똥개를 괴롭혀 주어야 한다는 의지가 더욱 굳건해졌다. 환희의 뽀얀 살결에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보니 마음까지 아파왔다. '“어떻게 해야 저 녀석을 실컷 때려 줄 수 있을까?” '“이러면 어떨까?” '모두들 민욱의 말에 머리를 맞댔다. '“저놈을 훔쳐다가 개장수에게 팔아먹는 거야. 그럼 우리는 돈도 벌고 똥개가 이 마을에서 사라져서 좋고.” '“맞다!” '“민욱 오빤 역시 똑똑해!” '활짝 웃는 환희의 웃음에 머리를 뒤적거리던 민욱은 괜히 우쭐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곧 기분이 다운되었다. 꾀돌이 성준이 뭔가 준비해 온 모양이었다. 주머니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세면봉투를 꺼내들었다. '누런 세면봉투에 어제 먹다 먹은 밥을 담아온 성준은 환희를 보며 자랑스럽게 봉투를 흔들었다. '“일단 저 녀석을 유인하자. 이걸로……. 환희야! 나 준비 잘 해왔지?” '“응! 오빠!” '“그럼 누가 저 개 목걸이를 풀지?” '민욱의 말에 일성, 이성, 성준이가 연달아 싫다는 말을 했다. '“난 싫어!” '“나도!” '“나도!” '친구들이 모두 한 목소리로 싫다고 합창하자 한순간 여러 가지 생각이 민욱의 머릿속을 날아다녔다. 도대체 어쩌자는 거지? 어떻게 하면 저 개를 골탕 먹일 수 있을까? 골똘히 생각을 하던 민욱은 가장 손쉬운 방법을 생각해냈다. '“그럼 우리 돌로 그냥 개를 때려 주자. 그러면 아프다고 소리 지를 거야.” '“맞아. 저 개도 나만큼 아파봐야 돼.” '환희는 얼굴을 찌푸리며 누렁개를 쏘아보았다. '“좋았어.” '결국 민욱이 내놓은 계획으로 낙찰을 본 다섯 명의 아이는 개를 향해 동시에 돌을 던졌다. 어린 아이들의 동작이었지만 그 효과는 꽤나 컸다. 곧 깨갱 하는 소리가 풀밭에 울려 퍼졌고 누렁개는 개집 속으로 종적을 감춰버렸다. 다섯 명의 아이는 총알처럼 그 자리를 뜨며 임무 완수! 라는 소리를 높이 질렀다. '환희가 기분 좋은 웃음소리를 냈다. 네 명의 남자 아이는 환희의 미소에 박수를 쳤고 민욱은 좋아라 하는 환희의 얼굴을 뚫어져라 보았다. 어릴 적 엄마가 울면 옆집 환희에게 장가를 보낸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환희야!” '“응, 오빠!” '일곱 살짜리 민욱의 눈에 환희는 너무도 귀여운 여동생이었다. 커다란 검은 눈동자에 분홍색 리본으로 검은 머리칼을 양쪽으로 묶은 앙증맞은 꼬마 아이였다. 자그마한 그녀의 얼굴에 즐거움이 가득하자 민욱은 미소를 지었다. '“이제 마음 풀어졌어?” '“어.” '환희는 빙그레 웃으며 첫째 오빠 일성이 곁으로 가 손을 꽉 쥐었다. 이제야 마음이 풀린다는 뜻으로. '“오빠!” '“복수하고 나니 기분 좋지? 이제 우리 집으로 갈까?” '“응!” '“모두 우리 집으로 가자. 엄마가 맛있는 거 해 주신다고 했어!” '일성은 복수를 하는 데 도와 준 친구들을 향해 미소를 지어보였다. '정의감으로 똘똘 뭉친 악동들은 어깨동무를 하며 집으로 향했다. '그 날 민욱은 환희네 집에 가서 그녀의 엄마가 만들어준 도넛과 우유를 먹으며 자신에게도 형이나 누나, 또는 여동생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시작이었던 것 같다. 민욱이 어린 환희를 유심히 보기 시작한 것이. 동그란 도넛을 한 입, 한 입 베어 먹는 그 입술이 얼마나 예쁜지 깨물어주고 싶었다. '민욱은 환희의 엄마에게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