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광활한 국토를 가진 중국의 상해 항에는 음산한 어둠이 내려앉은 지 오래라 음산함이 물씬 풍긴다. 그 한쪽 귀퉁이에 자세히 보지 않으면 사람인지 물건인지 모를 희미한 형체. 미세한 움직임이 있는 그 곳에, 이마를 덮은 앞머리 때문에 나이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앳돼 보이는 여자아이 덩그러니 앉아 있었다. 무릎을 양팔로 끌어안고 고개를 비스듬히 괸 그녀의 힘겨운 한숨소리가 주위를 깨웠다. 까만 생머리를 허리까지 늘어트린 얼굴에 서리는 하얀 입김. 희미한 불빛에 보송한 솜털이 보이는 얼굴은 성인이라고 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인다. 갈망하는 눈빛으로 항구에 정박해 있는 폐월수화 호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그 눈 속에 투명한 액체가 담겼다. 훔쳐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연민의 정을 주고 싶을 만큼 애잔함을 느끼게 하는 모습이다. 그녀가 이곳에 왜 와 있는지는 그녀밖에 알지 못했다. 그녀만의 이유를 가지고 쓰러질 듯 위태한 모습으로 폐월수화 호에서 그리운 엄마의 모습을 찾고 있었다.''“엄마, 우리가 정말 연말에 크루즈 여행을 하게 되는 거야? '헐렁한 하얀 면 티를 입고 흰 어깨를 드러낸 채 상기된 표정으로 엄마의 젖가슴을 만지며 묻는 딸. 엄마 역시 들뜬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손에 쥔 적금 통장을 뿌듯한 표정으로 가슴에 움켜쥐며 곧 그렇게 될 것이라며 대답하며 고개를 힘차게 끄떡였다. '“엄마, 초희는 떼어 놓고 가. 머리가 나빠서 재수하는 애는 재수 없으니까 공부나 하라고 해.” '참한 언니가 하나밖에 없는 동생을 깡그리 무시하는 발언을 입에 담다니, 초희는 경악하는 눈빛을 언니를 향해 쏘았다. '“언니! 언니도 재수했잖아. 엄마한테 혼날까봐 중국에 있는 아빠한테 도망쳤다가 시험 볼 때 왔었잖아.”'“그거야. 영어권에서 살다가 갑자기 대학만큼은 한국에서 다녔으면 하는 부모님 뜻에 따르다 보니 그랬지. 그리고 재수라기보다 아직 한글이 서툴러서 더 공부할 겸 아빠를 보살펴 드리느라고 그랬던 거지. 내가 놀다 온 줄 알아. 나도 그곳에서 아빠의 뜻에 따라 중국 남자한테 우리의 정신과 더불어 말을 가르치고 왔어.”'“언니도 시험 떨어진 주제에. 엄마 들었지? 언니 중국 가서 연애 하고 왔다는 거 실토 하는 거라니까. 혹 뉴욕에 있었던 거 아닌지 물어봐. 그때 언니 한참 고등학교 때 그 누구더라 딘이라는 이태리 계 남자하고 연락 주고받고 있었잖아. 내가 어렸어도 알 건 다 안다 뭐.”'“연애는 무슨. 나한테 한국어 배우던 그 사람 무서울 정도로 차가운 남자였어. 아빠의 부탁만 아니었다면 당장 그만 두고 싶을 만큼. 좋은 머리 하나만 믿고 나 같은 사람은 안중에도 없었어.”'“엄마도 기억하지, 언니 한국으로 나갔다가 시험에 떨어지고 중국에 있을 때 집에 찾아와서 언니 연락처 알려 달라고 정중히 말하던 딘이라는 눈이 부리부리한 남자. 그런데 중국 남자라니 역시 좋아 했기는 했나 보다. 언니가 그 중국 남자 모습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걸 보니.”'“절대 아니야! 여자한테는 흥미도 일지 않는다는 흐트러짐 없는 모습이었어. 그 모습을 좋아 했다는 건 인정해. 하지만 나를 여자가 아닌 한국어 선생님으로 너무 정중히 대해서 틈도 없었다.”'“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냉큼 올라간다고 하더니. 이왕 올라간 부뚜막에서 나 당신의 차갑고 인정머리 없는 모습이 좋아요 하고 고백이라도 하지 그랬어.”'초원이 노려보는 눈빛을 보면서 초희는 즐거운 듯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언니가 약 올라 주기를 바라며 더 부채질 하려는 듯 싱긋 웃었다.'“그때 내가 아빠 곁에 있었어야 했어. 그렇게 한국으로 오는 게 아니었어.”'“그게 아니라 그냥 미국에 있었어야지. 언니만 한국에 있다고 일부러 한국 대학에 강사자리 알아보고 온 엄마가 그때는 진짜 야속했어. 아빠는 중국으로 엄마하고 나는 한국으로 왔을 때부터 내가 그렇게 싫다고 해도 말을 안 듣더니만. 내가 미국에 있었으면 하버드대도 갔을 거야. 미국서 자란 내가 한국말로 써진 시험지를 어찌 해석해. 배배 꼬꼬 또 꼬아서 나온 시험지는 보기만 해도 질렸어. 언니는 아이큐가 따라주니까 그렇다 쳐도 난 뭐냐고? 그냥 우리는 다함께 미국에 있었어야 해. 한국말만 잘하면 되지 한국에서 꼭 살아야 한다는 법 있어?”'초희는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엄마의 손을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