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으리으리한 저택들이 곳곳에 보이는 성북동. 그중에서도 단연 눈에 돋보이는 웅장하고 화려한 저택 앞에 한 소년이 서 있었다. 주인의 성격을 말해주듯 주름 하나 잡히지 않은 흰색 상의와 남색 하의 교복은 맞춤옷처럼 그의 몸에 딱 맞았다. '구름 한 점 없다.'바람도 멈췄다. '바닥은 연신 뜨거운 열기가 춤을 추며 피어올랐다. 그럼에도 소년의 얼굴엔 땀방울 하나 흘리지 않았다. 오히려 오싹할 기분이 들 정도로 그의 눈동자는 시린 차가움을 담고 있었다. 움직임 없는 동상처럼 서 있는 소년은 바로 이 저택 소유주의 하나뿐인 아들이며 미래 성한그룹의 차기 CEO가 될 재목이었다.'“후욱.”'나직한 한숨소리가 규진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자신이 나고 자란 곳이지만 온기라곤 없는 황망한 이곳이 정말 싫었다. 그래서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기숙사가 딸린 고등학교로 진학해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지금까지 한 번도 들른 적 없었는데 방학이란 큰 장애물이 떡 하니 버티고 있었다. 무시해버릴까도 생각했지만 때맞춰 아버지의 호출 때문에 결국 어려운 걸음을 옮겼다. '언제쯤 이곳을 벗어날 수 있을까. 평생 오고 싶지 않은 곳이 있다면 바로 이곳이다.'한 걸음씩, 한 걸음씩 발을 옮기는 그의 몸은 마치 살얼음 위를 걷는 듯 위태롭기 짝이 없었다. 익숙한 행동으로 벽에 붙은 초인종을 누르려는데, 타이어 타는 냄새와 동시에 붉은색 스포츠카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멈춰 섰다. '“……!”'본능적으로 손이 먼저 떨려왔다. 아버지의 새 여자 서여린임을 몸의 감각이 먼저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떨림을 감추기 위해 주먹 쥔 손에 최대한 힘을 실었다. '차에서 내린 서여린이 자동키로 문을 잠그다 규진을 발견하고는 노골적으로 눈살을 찌푸렸다.'“왔으면 들어갈 것이지, 거치적거리게 대문 앞에서 뭐하는 거니?”'그를 지나친 그녀는 익숙한 행동으로 벨을 눌렀다. '“문 열어요.”'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철컥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다. 먼저 앞장서서 가는 그녀의 등을 규진은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자신에게 추악한 짓을 한 것도 모자라 씻을 수 없는 상처까지 안겨준 여자. 그 상처가 곪고 곪아 지독한 복수심마저 키우게 만든 장본인이 바로 눈앞에 서 있었다. 그녀와 한 공간에 있는 것조차 싫어 최대한 거리를 두고 걸음을 옮겼다. 현관문을 열자 성남댁이 반색을 했다.'“규진 군, 잘 왔어.”'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였다.'“아까부터 회장님이 기다리고 계셔. 들어가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