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그녀의 남은 시간 90일.''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던 소은은 움찔 멈춰 섰다.'아무도 없어야 할 집이, 분명 캄캄해야 할 집이 환하게 밝혀져 있었기 때문이었다.'‘누가 왔을까.’'소은은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마음대로 집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며 과연 누구일지.'설마 서초동 마녀님은 아니겠지?'소은은 고개를 숙여 현관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구두를 쳐다봤다.'솜씨 좋게 닦여서 반짝반짝 윤이 나는 남자 구두.'그렇다면 주인도 없는 집에 마음대로 들어온 사람은 남자라는 뜻이었다.'소은은 다시 한 번 신발을 내려다봤다. 못 보던 신발이었다. 아니다. 언젠가 본 적이 있더라도 기억 못할 수도 있었다.'도둑이 현관에 곱게 신발 벗어 놓고 털려고 들어왔을 리는 없고 집에 들어올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는 뜻인데, 어쨌거나 자격이 있는 그 사람은 누굴까?'소은은 조용히 안으로 들어가서 주위를 살폈다.'일단 거실엔 아무도 없었다.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살금살금 주방을 들여다봤지만 주방에도 사람이 없었다.'소은은 침실로 걸음을 옮기며 설마하니 아무리 집에 올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몰상식하게 함부로 안방에 침입할 리는 없을 것이라 생각하며 막 문고리를 잡는데 벌컥 문이 열리더니 시커먼 그림자가 쑥 튀어나왔다.'소은이 뒷걸음질까지 치며 화들짝 놀랐지만 남의 집 안방을 몰상식하게 공략한 시커먼 남자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소은을 쳐다봤다. 뭘 그렇게 놀라느냐는 듯이.'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려고 애쓰며 정신을 차려보니 어디서 많이 본 남자였다. 그리고 어디서 많이 본 그 남자는 트렁크 팬티 한 장만 달랑 입은 채로 천연덕스럽게 소은을 바라보고 있었다.'어디서 많이 본 남자, 장진혁.'“어디 갔다 왔어?”'진혁이 소은을 아래위로 훑어보며 물었다. 썩 반가워하는 것 같지 않으면서도 그렇다고 적대적이라고 할 수도 없는, 별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무덤덤한 표정이었다.'“어디 좀…… 그런데 왜 왔어요?”'소은의 질문에 진혁이 뭐 그런 터무니없는 질문이 다 있냐는 표정으로 소은을 노려봤다.'“언제 왔냐고 물어야 하는 것 아니야?”